침봉으로 이루어진 알프스의 서쪽은 만년설을 흰 이불처럼 덮고 있다. 그에 비하면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동알프스는 쉽게 구릉과 평원을 열어준다. 그런 지형 때문일까. 과거 로마를 넘보던 이민족들은 하나 같이 동알프스를 넘어 롬바르디 평원을 품으려 하였다.
이탈리아 원정길에 들어선 나폴레옹도 예외가 아니었다.
1796년, 프랑스 혁명시대의 실권자 폴 바라스에게 신임을 얻은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군을 물리치는 제3군의 지휘관으로 발탁된다. 이른바 1차 이탈리아 원정은 프로이센(독일) 방면에 주공인 2개군, 그리고 북이탈리아 방면에 1개군을 조공으로 배치하여 오스트리아를 포위한다는 전략이었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6∼7년에 이른 당시의 프랑스 정국은 혼란스러웠다. 혁명파와 반혁명파간의 극심한 이념대립이 지속 되는 가운데 프랑스 혁명정부를 부정하는 오스트리아, 영국 등의 동맹국 때문에 적잖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이탈리아 원정은 혁명 정부는 물론 나폴레옹의 운명을 결정짓는 전장이었다. 27세의 신예, 나폴레옹에게 맡겨진 이탈리아 전역은 군수품 지원상태는 말할 나위 없고 병력의 훈련 수준 또한 형편없었다. 거기다가 군 내부적으로 나폴레옹의 전투경력과 왜소한 외모까지도 병사들의 눈에 차지 않았다.
그런 상황을 모르지 않던 나폴레옹이지만 그는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 평원에서 오스트리아 연합군과 맞서기로 결심한다. 신속한 기동과 아울러 기만 작전이 필요로 했다.
"신뢰하는 나의 장병들이여! 우리는 헐벗음과 굶주림을 잘 참고 이겨냈다. 여러분들의 위대한 용기와 희생을 국가는 그 어떤 영광으로도 되돌려 주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지구상에서 가장 풍요롭고 비옥한 평원으로 여러분들을 인도할 것이다. 그리고 빛나는 영광과 부와 희망을 안겨줄 것이다. 용기와 인내가 충만한 여러분, 나를 따르라!!"
그해 4월 28일, 오스트리아 연합전선의 접합지역이 취약하다는 점을 미리 간파한 나폴레옹은 그 중앙부를 돌파하고 적 전력을 약화시키는 데 주안을 두었다. 나폴레옹은 연합군의 한 축인 피에드몬트군과 휴전 조약을 맺고 롬바르디를 가로막고 있는 포(Po)강을 5월 7일 새벽에 기습적으로 도하한 다음, 오스트리아군의 병참선을 차단하고 롬바르디 일대를 평정한다. 나폴레옹이 포강의 동북쪽 발렌자로 도하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던 오스트리아군의 비울라를 감쪽같이 속인 전략이었다.
롬바르디 전역의 승리로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전역을 평정한 개선장군이 되어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되었고 나아가 프랑스 통령으로의 위상을 갖추어가는 기반이 되었다. '그릇에 물을 넘치게 하는 것은 한 방울의 물이다' 고 한 그의 명언대로 나폴레옹은 최고 권력자를 향해 한 걸음씩 빠르게 다가서고 있었던 것이다.
시대와 세대가 바뀌었지만 나폴레옹은 여전히 프랑스가 자랑하는 영웅의 자리에 있다.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파리 중심에 있는 그의 묘지, 앵발리드를 찾아 화려했던 나폴레옹의 위용을 되새긴다. 시대마다 사람마다 나폴레옹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할지라도 그가 보여준 군인으로서의 전투의지와 물러서지 않는 진취적인 기상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필자는 나폴레옹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한 장의 그림, 알프스의 생 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기마도(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를 잊지 못한다. 특유의 모자를 쓴 젊은 나폴레옹이 백마 위에서 전진 방향을 지시하는 멋진 모습은 오래도록 '나폴레옹의 상징'으로 나의 기억을 점령하고 있다. 청소년기적 고향 마을 이발소 벽면에서 처음 만난 그 그림의 모조품에서부터 루브르박물관의 것에 이르기까지 나폴레옹에 대한 나의 인상기는 한결 같다.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은 1804년 궁정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그림이다. 나폴레옹의 숭배자이던 그는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의 웅혼한 기상을 유감없이 그려내고 싶었으리라.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내용을 그려 담고 싶었을 만큼.
그 그림은 세상에 회자되는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고 한 나폴레옹의 웅변보다 더 강한 이미지로 보는 이들을 끌어당긴다. 어쩌면 후세인들의 기억 속에 가장 강렬하게 공유되어 있는 나폴레옹의 상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그림을 다시 곰곰이 들여다보면서 불가능과 포기를 모르는 불세출의 영웅, 나폴레옹을 만난다. 영웅이 없는 듯한 시대에 사는 내가 영웅을 만나고 싶은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내 나라의 앞날에 대한 무한의 가능성과 자긍심까지도 이 그림 속에서 읽어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김정식 육군삼사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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