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은 남미의 수리남을 배경으로 마약 대부와 국정원 사이를 오가며 활약을 펼치는 한 비즈니스맨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완벽한 허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여기에는 어떤 허구적 상상이 더해졌을까.
◆'나르코스'의 한국 버전?…실화 바탕
'본 작품은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으나, 시리즈 내에서 묘사된 인물과 사건은 극적인 목적을 위해 재창조되었음을 밝힙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은 이런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최근 드라마들이 대부분 '실제 사건과는 무관하다'고 자막을 고지하고 시작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이런 고지로 '수리남'이 시작하는 이유는 그 서사가 너무나 드라마틱하고 허구적이라 "과연 저런 일이 가능하긴 해?"라고 시작부터 느낄 수 있어서다.
실제로 자막과 함께 보이는 장면은 우리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듯한 정글에 난 길로 기관총을 세운 지프차와 그 뒤로 두 대의 트럭이 달리는 모습이다. 그곳은 2009년 수리남의 국경지대다. 한국인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에 수리남이라는 남미의 낯선 나라가 등장하고 달리는 트럭에는 현지인들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강인구(하정우)와 함께 앉아 있다. 강인구가 거기 앉아 있는 게 생뚱맞게 보이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한국 드라마인데, 수리남에서 펼쳐질 엄청난 모험담이 담길 것이란 예감 때문이다. 그러니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고지가 필요할 법하다.
그 실제 사건은 이미 전도연 주연의 '집으로 가는 길'(2013)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통해 알려졌던 조봉행 사건이다. 수리남의 마약왕 조봉행은 마약 운반에 일반인들을 활용하기도 했는데 '집으로 가는 길'의 평범한 주부 정연(전도연)은 그 덫에 휘말려 프랑스에서 마약범으로 몰리게 되고 결국 프랑스 외딴 섬 마르티니크에 있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2년이라는 악몽 같은 시간을 버텨내고 간신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수리남'은 바로 그 마약왕 조봉행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마약으로 수리남을 장악해 심지어 당시 대통령이었던 데시 바우테르서까지 포섭해 제 맘대로 움직였던 권력자가 바로 조봉행이다. 실제 조봉행은 1980년대 선박 냉동기사로 일하며 8년 정도 수리남에 거주했었고, 94년 국내에서 사기 사건을 저지른 후 경찰들을 피하기 위해 수리남으로 도피한 인물이다. 수리남에서는 생선공장을 운영했지만 실상은 수입품 밀매를 했고, 이후 남미 최대 마약조직인 칼리 카르텔과 손잡고 마약 거래에 뛰어들었다.
칼리 카르텔은 '넷플릭스'에서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나르코스' 시즌2, 3에 등장했던 실제 마약조직이다. '나르코스' 시즌1이 악명 높은 마약왕 에스코바르가 이끄는 메데인 카르텔의 이야기였다면, 시즌2에 등장해 시즌3에 본격적으로 다뤄진 것이 로드리게스 형제가 이끄는 칼리 카르텔의 이야기였다. 그만큼 조봉행은 마약계의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던 것.
◆'수리남'에 깃든 한국 아버지 서사
물론 '수리남'은 이러한 실화에 허구적 상상력을 덧붙였다. 조봉행에 해당하는 전요환(황정민)을 현지에서 목사를 가장한 인물로 그려낸 점이 그렇고, 국내에서부터 이미 마약에 손을 대고 이를 이용해 정재계까지 쥐고 흔들던 인물로 설정한 점이 그렇다. 전요환이 수리남으로 가기 전에 한국에서 벌인 일련의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묘하게도 개발시대의 폭력적이고 탈법적인 어두운 한국의 현대사가 겹쳐진다. 거기에는 타락한 안기부 요원이 등장하고, 정관계를 끼고 벌어지는 개발 이권에 대한 이야기, 사이비 종교 이야기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그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당대의 시대적 공기를 담는 면들이 있다. 그래서 2회에 국정원 요원 최창호(박해수)의 설명으로 소개되는 전요환의 행적은, 1회에 강인구의 내레이션으로 소개되는 이 평범한 가장의 행적과 묘하게 대비된다. 즉, 아버지가 베트남에 갔다 와서 가족들 생계를 위해 쉬지 않고 일하다 사고로 사망하고, 어머니마저 사망한 후 덜컥 동생들을 부양하게 된 그가 노래방, 카센터, 미군을 상대로 한 장사 등을 하다 친구의 제안으로 수리남에 홍어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들어온 과정이 그렇다.
전요환으로 대변되는 이야기가 개발시대 한국사회에서 풍기던 부패의 냄새를 풍긴다면, 강인구의 이야기는 그 시대를 살아내고 끝내 수리남까지 오게 된 가장의 짠내가 느껴진다. 그래서 '수리남'의 마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치열한 세력 다툼과, 전요환 일당을 잡기 위해 수 싸움을 벌이는 국정원 요원 최창호의 대결구도 속에는 강인구라는 '한국 아버지 서사'가 등장하며 강한 한국적인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다.
그저 수리남에서 먹지 않고 버리는 홍어를 싼 가격에 수입해 팔아 가족들만큼은 힘들지 않게 살아보게 하려는 강인구의 꿈은, 전요환이 그 홍어에 마약을 숨겨 국경을 넘기려다 발각되면서 수포로 돌아간다. 하루아침에 마약 운반책의 누명을 쓰게 된 강인구는 친한 친구마저 살해당하자 최창호와 손잡고 전요환을 검거하기 위한 '언더커버 작전'에 뛰어든다. 즉, 전요환이라는 실제 조봉행 사건을 가져왔지만, 가장 역할의 짠내 가득 풍기는 강인구라는 인물을 세움으로써 치열하고 살벌한 심리전과 더불어 한국적인 정서를 부여한 것이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다리를 절고 돌아온 아버지가 그곳에서 무슨 일을 했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강인구는 수리남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끝까지 가족을 챙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겪으며 드디어 아버지를 이해한다. 아버지의 베트남과 자신의 수리남이 모두 가장들이면 누구나 뛰어드는 치열한 전장이라는 걸 알게 되는 것이다.
◆'나르코스'와는 다른 서사…호불호 갈려
'수리남'은 이처럼 아버지의 이야기를 마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느와르 장르 속에 담아 넣음으로써 색다른 색깔을 만들었다. 이것은 '범죄와의 전쟁' 같은 작품 속에서도 아버지 서사를 자주 드러내곤 했던 윤종빈 감독의 일관된 선택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이 작품을 그저 '나르코스'의 한국 버전처럼 보이지 않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기도 하다.
장르적으로 웰메이드된 작품이고, 특히 하정우, 황정민은 물론이고 박해수, 조우진, 유연석 그리고 장첸까지 빈구석 없이 꽉 채워진 연기의 향연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그래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반응은 괜찮은 편이다. OTT 순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에 의하면 지난 18일 기준 글로벌 TV쇼 부문 4위에 올라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장르적인 재미에 집중하는 시청자들에게는 6회까지 시간 순삭하는 몰입감을 선사하는 작품이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지나치게 폭력적인 장면들이나 다소 개연성이 떨어져 보이는 전개, 특히 이렇다 할 여성 캐릭터가 거의 전무한 성비 불균형 등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도 적지 않다. 물론 감독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윤종빈 감독의 전작들에서도 이러한 평가들이 호불호를 만들었다는 건 그저 우연한 일처럼 여겨지진 않는다.
여기에 최근에는 수리남 정부에서 지나치게 수리남을 마약의 소굴로 묘사하고 있다며 제작사를 상대로 법적조치를 고려중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즉, 과거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현재는 달라졌는데 이 작품으로 국가 이미지가 훼손됐다는 게 그 이유다. 수리남의 과거를 다루는 이야기로서 문제가 된다고 보긴 어렵지만, 최근 K콘텐츠가 그만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하다못해 엔딩에 자막으로나마 현재의 달라진 수리남에 대해 언급하는 배려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잘 만든 작품이지만, 호불호도 갈리고 잡음도 적지 않은 작품이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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