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채널을 돌리다 어느 채널에 멈춰섰습니다. 노래가 나오는데 마침 아버지의 애창곡이었습니다. 평소 조용필, 주현미의 노래, 진성의 '안동역에서'를 즐겨부르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한 동안 가만히 TV 속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떠올려봤습니다.
제게 아버지는 항상 곁에 계실 줄로만 알았습니다. 운동과 노래를 좋아하셨고 여기저기 움직이는 것 좋아하셨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아해서 집 인근 복지관 등에서 만난 다른 어르신들에게 한 턱 쏘는 것도 좋아하셨던 아버지였기에 항상 그렇게 정정한 모습으로 계실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 착각이었습니다. 5년 전부터 갑자기 건강이 쇠약해지시더니 치매 증세까지 보이셔서 저를 비롯한 아버지의 자식들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갑자기 숫자가 안 보인다"하시고, 심지어는 저희들 몰래 새벽에 운전하시다 사고를 당하기도 하시는 등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저희 자식들은 아이가 돼 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병석에 계신 아버지를 돌보면서 가장 가슴아팠던 때가 있었습니다. 해외 출장을 다녀온 후 아버지를 돌봐드리다보니 겨드랑이 부분을 보니 뭔가 빨간 게 돋아나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병원에서는 대상포진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었지요. 평소에도 병원 가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던데다 자식들 걱정할까봐 아픔을 꾹 참고 계셨을 걸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버지의 유품으로 아직도 버리지 않은 것이 두 개 있습니다. 제가 해외 출장을 갔다가 아버지를 위해 샀던 운동화와 모직 재질의 모자입니다. 아버지가 아프시기 전, 어머니가 먼저 다치셔서 수술을 받아야 했었을 때였죠. 그 때 어머니 다 나으시면 두 분이 같이 산책다닐 때 신으시라고 사드렸던 그 신발과 모자. 사드렸을 당시에는 바로 신지 못하셨지만 나중에 병세가 호전돼서 집 인근 복지관에 가실 때 그 신발 신고 왔다갔다 하셨죠.
그 신발을 살 때 '부모님 두 분이 이 신발을 신고 걷기만 해도 좋을텐데'라는 소망으로 샀는데 다행이 소망이 이뤄진 셈이긴 했습니다. 게다가 그 신을 보면서 아버지가 살아계셔서 그 신을 신고 걸어다니고 제 옆에 계셨다는 사실 그 자체가 제게는 행복이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 신발과 모자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유품을 정리하면서 차마 버리지 못하고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곧 있으면 당신의 외손자가 장가를 갑니다. 아버지에게 외손자가 결혼해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결혼을 서둘러 준비했지만 결국 이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한 채 저희 곁을 떠나가셨네요. 사실, 아버지가 조금씩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몇 년 더 저희 곁에 머물러 주셨으면'하는 소망을 가지기도 했는데 어찌보면 욕심이었나봅니다. 병석에 누워계시다가도 "아픈 거 다 나으면 마누라 데리고 자동차로 전국을 일주할 거야"라시던 아버지의 말씀이 이뤄질 줄 알았는데….
그래도 아버지, 마지막을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결국 가족은 함께 있어야 함을 아버지를 모시면서 깨닫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문득 생각날 때면 아버지가 노래하시던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을 봅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와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깁니다. 아버지, 영원히 살 수 있는 세상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면 그 곳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시길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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