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9·19 안보 자해 합의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독일의 1차 대전 패배의 대가는 가혹했다. 1919년 6월 조인된 베르사유 조약으로 총병력은 10만 명으로 묶였다. 이마저도 전원이 장기 복무 병사여야 했다. 독일이 10만 명을 정기적으로 교체해 전쟁이 벌어졌을 때 즉각 동원할 수 있는 대규모의 훈련된 예비군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연합국의 '흉계'였다.

그리고 해군의 보유 함정은 총배수량 10만t으로 제한된 데다 잠수함은 아예 보유가 금지됐으며 공군은 없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독일 통일 전 프로이센이 세계 최초로 설립해 효율적인 전쟁 지도력을 과시한 참모본부가 해체됐고, 주요 군사학교가 폐쇄됐으며, 요새·병영·비행장·군수품 창고 등 군사 기반 시설 대부분이 파괴·폐쇄됐다.

이런 제약하에서 신무기 개발과 전략·전술 훈련은 불가능했다. 독일은 이런 난관을 소련과 군사협력으로 헤쳐 나갔다. 당시 독일은 1차 대전 전범국으로, 소련은 공산혁명이라는 전염병의 진원지로 국제사회에서 모두 배척당했다. 이런 고립무원의 처지가 이데올로기에서 물과 기름이었던 두 나라를 군사적으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로 이끈 것이다. 이를 통해 소련은 독일의 선진적 군사 기술과 교리를 습득할 수 있었고, 독일은 연합국의 감시가 미치지 않는 훈련장을 얻었다.

1926년 체결된 조약에 따라 독일은 소련 남서부 스텝(steppe) 지대에 연구 단지를 세워 항공기 성능 시험을 하고, 기갑전(機甲戰) 교리를 개발·연마했으며, 화학무기를 실험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군사협력 사업을 통해 독일은 모델, 브라우히치, 만슈타인 등 2차 대전의 여러 명장(名將)들도 길러냈다.

해병대가 남북이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긴장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2018년 '9·19 합의' 이후 연평도·백령도에 배치한 K-9 자주포와 스파이크 미사일, 천무(다연장로켓) 등을 육지로 옮겨와 훈련을 했고 이 과정에서 94억 원의 비용이 소요됐다고 한다. 9·19 합의 때문에 안 써도 될 국방비가 허비됐다고 할 수밖에 없다.

9·19 합의는 우리 군이 우리 땅에서 훈련하지 못하도록 했다. 1920년대 독일군은 어쩔 수 없어서 자기 땅에서 훈련을 못 했지만 우리 군은 문재인 정권의 어리석은 합의 때문에 우리 땅에서 훈련을 하지 못한다. 용서할 수 없는 안보 자해다.

jghun31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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