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배추 한 포기 1만원? 올 김장 어쩌나"…식당업자·주부 한숨

잦은 비·태풍에 채솟값 폭등…대구 배춧값 전월비 77%↑
무·고춧가루·마늘도 상승세…도매로 채소 떼오는 시장 상인들도 연일 한숨

배추 가격이 고공 행진하고 있는 가운데 25일 대구 북구 칠성시장에서 판매중인 배추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배추 가격이 고공 행진하고 있는 가운데 25일 대구 북구 칠성시장에서 판매중인 배추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장마와 태풍 영향으로 작황 부진이 이어지자 채솟값이 금값으로 치솟고 있다. 최근 한 달 사이 배추와 무의 가격이 최대 두 배까지 오르면서 구내식당과 상인들의 시름이 깊어졌고, 김장철을 앞둔 소비자들의 부담도 커졌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채솟값

25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23일 대구의 배추 가격은 세 포기에 3만원(도매가)으로 지난달 같은 기간 1만6천900원보다 77.5% 올랐다. 무도 20㎏에 3만2천원으로 지난달 2만1천800원보다 46.7% 뛰었다.

대구시가 조사한 '전통시장 물가동향'의 시장별 통배추(2㎏) 가격을 보면, 동구시장이 지난달 넷째 주 8천원에서 이달 넷째 주 1만6천원으로 두 배나 급등했다. 같은 기간 남문시장(7천→1만3천원)과 수성시장(9천→1만5천원)의 상승 폭도 컸다.

무(1㎏)의 경우 팔달시장이 한 달 새 1천500원에서 3천원으로 갑절로 뛰었고, 수성시장(2천→3천원)과 남문시장(2천→2천700원), 서문시장(2천→2천670원) 등의 물가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김장 재료로 쓰이는 고춧가루와 마늘 등도 소폭 올랐다. 대구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넷째 주 1만1천250원이었던 깐마늘 1㎏의 전통시장 가격이 이달 넷째 주 1만1천375원으로 125원 올랐다. 고춧가루도 지난달 100g에 2천608원이었으나 이달 2천693원으로 85원 인상됐다.

◆고물가에 자영업자들 한숨

최대 2배 가까이 급등한 채솟값에 자영업자들은 연일 울상을 짓고 있다. 특히 육류보다 비교적 채소를 더 많이 취급하는 가게들은 운영 자체가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대구 한 구청 구내식당에서 영양사로 일하는 A 씨는 요즘 식단에 채소류 반찬을 넣을지 말지 고민이다. 태풍 등 기후 영향으로 채솟값이 너무 올라 몇 가지만 넣더라도 식단 단가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A씨는 "1인에 3천600원이던 식단 단가가 지난달부터 4천원을 웃돌고 있다"며 "장마 등 영향으로 채소류 음식을 만드는 게 부담이 되고 있다. 배춧값이 오르면서 김치 대신 깍두기로 식단을 짜고, 겉절이보다 콩나물과 두부 등 가격변동이 낮은 메뉴로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달서구에서 마라탕 가게를 운영 중인 B 씨는 "한 상자에 2만원하던 알배기 배추가 5만원을 넘었다. 청경채와 버섯 등도 두 배 이상 뛰어서 매출이 올라도 손에 남는 게 없다"며 "메뉴 가격이라도 올릴지 고민 중이지만 손님들 불만이 있을까봐 쉽게 결정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도매로 채소를 떼 오는 시장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태풍 수해로 농산물 도매가가 오른 만큼 가격을 인상했을 뿐이지만 손님이 뚝 끊겼다.

이날 찾은 대구 중구 서문시장 한 채소가게에선 "깻잎 한 묶음에 3천원"이라는 상인의 말을 들은 손님이 손사래를 치며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이곳 상인 박덕임(71) 씨는 "깻잎 두 묶음에 5천원이라고 해도 손님들이 비싸다고 한다"며 "떼온 물건들이 팔리지 않으면 다 버려야 하는데 걱정이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구 중구 서문시장 한 채소가게. 채솟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도매로 물건을 떼온 상인들이
대구 중구 서문시장 한 채소가게. 채솟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도매로 물건을 떼온 상인들이 "손님이 줄었다"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임재환 기자

◆오른 밥상 물가에 고민 깊은 주부들

채솟값이 밥상 물가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소비자들도 근심이 가득해졌다. 주부들은 반찬에 채소를 골고루 섞고 싶지만 지나치게 오른 야채값으로 반찬 만드는 게 어렵다고 했다.

주부 C(52) 씨는 "저렴했던 채솟값이 이렇게 폭등한 게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다. 음식에 곁들이는 빨간고추나 쌈 등 채소류를 사는 게 매우 부담스러워질 정도"라며 "물가가 안정될 때까지 음식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파와 양파 등 채소만 사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김장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주부들의 한숨이 늘고 있다. 이날 서문시장에서 만난 주부 D(52) 씨는 "오늘 다른 반찬거리를 사러 왔다가 배추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우리 가족은 4명이라 열 포기 정도는 해야 하는데 배춧값만 10만원이 들게 생겼다. 물가 추이를 좀 지켜보고 예년보다 양을 줄일지 정할 것"이라고 했다.

김원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예실장은 "이번 여름에 비가 내리거나 흐린 날이 많았기 때문에 채솟값이 올라간 측면이 있다"며 "현재는 채소 가격이 안정적으로 가는 추세다. 다만 배추는 준고랭지 배추가 이달 하순부터 출하되기 때문에 10월부터 가격이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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