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바베큐 효과와 가짜 뉴스

석민 디지털논설실장
석민 디지털논설실장

TV 방송에서 '자막'의 효과는 막강하다. 없는 말도 있는 사실처럼 만들어 낼 수 있다. 두 눈과 두 귀로 똑똑히 보고 듣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의아하지만, 이미 과학적 실험에 의해 확인된 과학적 사실이다. "바베큐"라는 말을 여러 번 들려줄 때 자막으로 '밥익혀요' '밤에키워' '아늑해요'처럼 비슷하게 들리는 단어를 보여주면 대중(大衆)들은 "바베큐"가 아니라 '자막 속 단어'로 음성을 인식한다. '바베큐성 사전 각인 효과'는 대중이 불분명한 소리를 미디어에 의해 전달받을 때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방송 조작은 이처럼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순방 과정에서 빚어진 MBC의 '방송 조작 논란'은 '자막'을 활용한 바베큐성 사전 각인 효과라는 과학을 적용(?)한 결과물인 셈이다.

가짜 뉴스의 대량 유포와 확산은 또 다른 문제이다. 방송된 장면의 객관적인 모습은 몹시 소란스럽고 잡음이 심해서 대통령의 발언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통령의 발언이 비판론자들의 말처럼 나라의 품격과 국익을 훼손하는 중차대한 사안이라면, 언론과 시민사회는 SNS 등에 퍼나르기에 앞서 무엇보다 '정확한 사실 확인'을 우선해야 했다. 단어 하나하나를 확인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발언과 대화의 전후 맥락과 그 상황의 배경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합리적이다.

그러나 MBC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많은 언론과 국민들은 '군중심리학'의 저자 귀스타브 르 봉이 지적한 바와 같이, 폭발적인 비합리성과 망동성(妄動性), 경신성(輕信性; 신뢰성 낮은 행위)이라는 군중(群衆)의 행태를 보여주었다. 정치 공작과 음모에 대단히 취약한 특성이다. 르 봉은 이를 '민주주의의 적(敵)'으로 규정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사회 지도층 인사까지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상황에 대한 반성과 비판 없이 군중과 마찬가지로 '바베큐성 사전 각인 효과'에 따른 인식의 오류에 의해 생긴 가짜 뉴스를 기정사실화하기에 급급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광우병 사태, 사드 기지 전자파 괴담 등 숱한 가짜 뉴스에 당하고도 교훈과 지혜를 얻지 못한 지도자는 더 이상 지도자의 자격을 갖기 어렵다. 이제 우리 국민은 '우매한 군중'에서 '자유시민'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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