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먼저 떠올리는 게 경쟁이지만, SBS '싱포골드'는 전혀 다른 무대를 보여준다. 이른바 퍼포먼스 합창 오디션. 여럿이 함께 모여 퍼포먼스와 노래로 몸과 입을 맞추는 그 무대 자체가 오디션 경쟁보다 더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오디션 프로그램과 박진영의 만남
SBS 오디션 프로그램과 박진영은 그 인연이 깊다. 2001년 '초특급 일요일 만세-박진영의 영재 육성 프로젝트 99%의 도전'은 그 첫 번째 인연이다. 2AM 조권, 원더걸스 선예 같은 아티스트들이 이때 박진영에 의해 발굴된 영재들이었다. 그로부터 5년 후 박진영은 '슈퍼스타 서바이벌'이라는 국내와 미국을 아우르는 10부작 오디션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여기서 2PM 이준호, 황찬성, 옥택연과 걸그룹 시크릿의 한선화도 발굴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박진영을 오디션 심사위원으로 자리매김시킨 'K팝스타'에 출연해 무려 시즌6 동안 양현석과 함께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양현석이 버닝썬 게이트로 인해 경찰 조사와 재판을 받는 상황이 되면서 'K팝스타'는 더 이상 시즌을 이어갈 수 없게 됐다. 그 후로 몇 년 간의 휴지기를 가진 후 지난 해 '라우드'로 다시 박진영은 SBS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돌아왔고, 올해 '싱포골드'의 심사위원이자 진행자로 나섰다. 이처럼 SBS 오디션 프로그램과 박진영의 긴 인연을 염두에 두고 보면 '싱포골드'가 프로그램을 알리는데 있어서 박진영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싱포골드'라는 프로그램과 박진영의 조합은 과연 어떨까. 사실 프로듀서로서의 박진영이 '퍼포먼스 합창'이라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분야에 얼마나 전문적인 코멘트를 내놓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건 사실이다. 즉 아이돌 그룹을 발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야 기획사 수장으로서의 경험과 작곡가이자 아티스트이며 프로듀서인 그 경험들이 녹아들어, 실질적인 심사 코멘트들이 참가자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까지도 공감하게 만든 지점이 분명했다. 사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의 역할은 단지 당락을 결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분야에 대한 정보들을 시청자들에게 알려주는 교육적인(?) 역할도 부여받는다. 더 깊게 알아야, 더 오디션의 묘미를 느낄 수 있어서다. 그래서 그 유명한 '공기 반 소리 반'의 코멘트는 가창력을 이야기할 때 중요한 평가 지수로서 당시의 오디션 프로그램 시청자들이 주목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음악은 통한다 하더라도 합창은 분야가 다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첫 방송에서 뮤지컬 전공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신생합창단 꽥꽥이 합창단의 경우, 김형석 심사위원이 "앙상블의 밸런스가 너무 완벽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금메달을 준 것과 달리, 박진영이 "열 번 부르면 똑같이 부를 것 같다"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은 부분이 그것이다. 심사가 다 똑같을 수는 없지만 너무 갈리는 이러한 평가에서 박진영이 그 이유로 내놓은 "한 사람 같길 바라는데 다 똑같아서 한 사람 같길 바라는 게 아니다"라는 말은 다소 모호하게 전해졌던 게 사실이다. 즉, 평가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평가에 대한 설명을 '공기 반 소리 반'처럼 명쾌하게 공감되는 표현으로 풀어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SBS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박진영의 이러한 냉정한 평가들은 지금껏 프로그램에 텐션을 만들어주며 힘을 발휘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싱포골드'라는 프로그램에서도 그것이 어울릴 지는 두고 봐야 될 상황이다. 그건 이 프로그램이 날선 경쟁보다는 하모니 가득한 무대가 주는 감동에 포인트를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 가득한 합창의 향연
심사평이 엇갈린 면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포골드'가 가진 가능성이 드러난 대목은 저마다 다른 세대, 스토리를 가진 합창단들과 그들이 무대에서 퍼포먼스와 합창으로 펼쳐내는 감동적인 순간들이다. 첫 출연팀으로 잔뜩 긴장해서 무대에 오른 제주도에서 온 제주 울림 뮤지컬 합창단은 결국 메달 획득에 실패해 첫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순수한 아이들의 목소리와 퍼포먼스를 볼 수 있는 합창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 팀이었다. 특히 최연소 참가자 한루아(7세)의 열정적인 모습은 보는 내내 미소가 피어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세 개의 은메달 혹은 금메달이 하나 이상 포함된 메달 세 개를 받아야 합격할 수 있는 룰이었지만, 김형석과 리아킴이 은메달을 주고 박진영이 동메달을 줌으로써 결국 탈락하게 되는 아쉬움이 있었다.
압권이었던 건 탈락하고 무대 뒤로 내려와 울고 있는 한루아에게 9살 김다미가 웃게 하기 위해 툭 던진 "박진영씨 밉지!"라고 한 말이다. 진짜 밉다는 의미가 아니라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던지는 그 말에 담긴 순수함이 전해지면서 팀 전체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담겼다. 그것이 바로 개인 오디션 경연이 아닌 합창이어서 가능한 '싱포골드'만의 장면이 아닐까.
이런 '싱포골드'만의 가능성은 경력단절을 겪은 아내를 위해 남편이 만든 팀 은여울여성합창단의 무대와, 특히 천안의 중장년 합창단 J콰이어에서도 잘 드러났다. 성악을 전공했지만 생업 때문에 노래를 잠시 접어뒀던 여성들이 성악풍으로 재해석해 부른 원더걸스의 'Nobody'에서는 노래는 물론이고 '칼각'을 맞춰 추는 춤 동작에서도 묘한 감흥이 묻어났다. 또 J콰이어가 부른 버스커버스커의 '꽃송이가'는 중장년 삶의 연륜이 묻어나 보는 이들에게 알 수 없는 감동과 눈물을 전해준 무대가 됐다. 절제된 춤 동작을 퍼포먼스로 보여주면서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따뜻하게 시선을 주고받는 모습들은 노래 이전에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그건 노래와 춤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 무대를 하기 위해 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쳤고 또 그 마음들이 전해졌는가가 그 안에서 전해졌기 때문이다.
◆주말 시간대 시너지 생겨날까
이처럼 '싱포골드'가 가진 힘은 바로 그 '함께 부른다'는 합창 자체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각각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노래를 통해 한 목소리를 내는 광경 자체가 주는 감흥이 그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치열한 편성 경쟁이 펼쳐지는 주말 시간대에 '싱포골드'의 첫 방송 시청률은 2.9%(닐슨 코리아)로 낮은 편이다. KBS '1박2일 시즌4'가 부동의 10%대 시청률을 가져가는 시간대에 진입장벽이 분명했던 탓이다.
하지만 '싱포골드'가 갖고 있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퍼포먼스 합창 배틀'이라는 소재는 주말 시간대와 잘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아직 낙담하긴 이르다. 오래도록 방영된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들과 비교해 인지도가 낮을 수밖에 없지만, 예선을 거쳐 갈수록 퍼포먼스와 합창이 어우러질 무대들이 어떤 화제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도 적지 않다.
사실 과거 '합창'이라는 소재는 이미 KBS '남자의 자격' '하모니 특집'으로 큰 성공을 거둔 이력이 있다. 당시 대회에 나왔던 시니어합창단 '청춘합창단'은 짧은 무대만으로 모두를 울려버린 감동의 순간을 전해주기도 했다. 그만큼 합창이라는 소재가 충분히 강력한 힘이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여기에 '싱포골드'는 '쇼 콰이어'(Show Choir), 즉 퍼포먼스 합창으로서 듣는 음악만이 아닌 보는 퍼포먼스가 더해졌다. 마치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듯한 무대를 기대하게 되는 대목이다.
물론 치열한 시청률 경쟁에서 밀려날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경쟁 그 자체보다 하모니의 즐거움을 제대로 전할 수 있는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이 되길 기대한다. 그것이 '싱포골드'라는 프로그램의 진짜 가치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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