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검은 빵 한 조각의 효용

손진은 시인

손진은 시인
손진은 시인

월요일 아침, 생일을 맞은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친구와 함께 포테이토 칩 한 봉지를 나눠 먹으며 등교한다. 오후에 있을 생일파티에서 친구들에게 받을 선물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려 애쓰면서. 앞을 살피지 않은 아이는 교차로 인도 연석에 발을 헛디뎠고, 차에 치여 쓰러진다. 아버지에게 연락이 가고 구급차가 달려오고 아이는 충격에 의한 가벼운 뇌진탕과 통증으로 입원한다. 의사는 별 거 아니라고, 조금 있으면 깨어난다고 부모를 안심시킨다.

흔히 '문학의 효용'을 묻는 질문에 '쓸모없음의 쓸모있음'(無用之用)이라는 말을 해주곤 한다. 그 예로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 '대성당'에 나오는 단편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만한 답은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아들의 생일날,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게 되는 한 부부와, 그들에게 생일 케이크를 찾아가라고 독촉 전화를 하는 빵집 주인의 이야기를 그린다. 부부는 병실에서 아들 곁을 지키다가 잠시 집에 들를 때마다 이상한 전화를 계속 받는다. "스코티를 잊어버렸소?" "여기 가져가지 않은 케이크 하나가 있어요." 아들을 치고 간 뺑소니 범인인 줄 알았던 부부의 분노가 커진다.

혈관폐색 증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아들이 세상을 떠난 날, 부부는 다시 걸려온 전화에서 발신인이 아들의 생일케이크를 주문했던 동네 빵집 주인임을 알게 된다. 그들은 아들의 장례를 치르자마자 그를 죽여버리기라도 할 듯, 빵집을 찾아간다. 상황을 몰랐던 빵집 주인은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하고, 오븐에서 막 꺼낸 따뜻한 계피 롤빵을 부부 앞에 내어준다. 부부가 롤빵을 집어먹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며 이런 말을 한다.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오. 더 있소. 다 드시오. 먹고 싶은 만큼 드시오.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 여기에 있으니."

생각해 보라. 아이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허전을 롤빵 몇 롤이 상쇄시킬 수 있겠는가? 그러나 때로 진심어린 위로로 건네는 빵은 죽음과 무게나 기울기가 맞지 않음에도 알 수 없는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법. 허기진 그들에게 "언제라도 빵냄새는 꽃향기보다 좋았다"라는 말도 진실이다.

카버는 이 단편에서 우리의 안온한 현실이 얼마나 쉽게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지,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손길을 내미는 존재는 근사하고 잘 난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무시하기 쉬운, 허접한 용모에 퉁명스런 사람이라고 말한다. 사실 소설 속, 멋진 옷과 넥타이를 매일 갈아입고 의례적인 친절을 보이는 의사와 기계적인 태도의 간호사의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당신의 허기를 채워줄 빵 한 조각이 아직 남아 있다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당신이 잠시 쉴 수 있는 의자가 있다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거기가 바로 문학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무언가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혹, 당신이야말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분명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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