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신생아 중환자실 콜(call)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선생님, 지금 신생아 중환자실에 폐 계면활성제 치료를 해야 합니다. 바로 오실 수 있으신가요?" 밤 10시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연락이 왔다. 낮에 담당 선생님께서 이때쯤 치료해야 한다는 언질을 주셨지만, 막상 연락을 받으니 당황스러웠다. 미숙아나 만삭으로 태어난 아기들 중에 여러 이유로 폐포(폐의 공기주머니)가 잘 펴지지 않아 심한 호흡 곤란증을 겪는 아이들이 있다. 호흡을 도와주는 인공호흡기 치료와 더불어 폐포가 허탈 되지 않고 잘 펴지게 하기 위해 기도에 삽관 된 튜브로 폐 계면활성제를 투여해 준다. 그 치료를 폐 계면활성제 치료라고 한다. 오후에 한차례 시행했지만, 여전히 호흡곤란이 지속되어 한차례 더 하기로 계획이 되었던 일이다. 일전에 당직을 설 때, 전공의 선생님과 같이 치료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오롯이 혼자 치료를 해야 했기에 약간은 긴장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20여 년 전에 마지막으로 했던 것을 다시 하려니……치료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조제된 약물을 아기의 자세를 바꾸어 가면서, 삽관 된 튜브로 넣고 Ambu bagging(앰부배깅, 수동으로 산소를 공급하는 것)을 여러 번 반복하면 되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신생아실을 담당하는 전공의 선생님이 하는 일이지만, 오늘은 불가피하게 내가 하게 되었다.

병원에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부족하다. 비단 우리 병원만의 문제가 아닌 대구의 타 대학병원, 아니 한국의 모든 병원이 겪고 있는 문제인 듯하다. '저출산'으로 인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이 줄어들던 차에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과 코로나19 등의 직격탄을 맞아 지원 규모가 눈에 띄게 줄었다.

전공의 지원율은 2020년 74%, 2021년 38%를 기록한데 이어 올해는 27.5%까지 줄었다. 올해 1년 차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이 전혀 없는 병원이 전체 수련 병원의 72% 달한다. 내년에는 또 얼마나 떨어질지 암담하기만 하다. 대구지역만 국한해서 보면 대구 전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정원이 15명인데 2명 밖에 없다. 작년에도 2명 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정보로는 내년에는 아무도 없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이 줄어드니, 누군가는 그 공백을 메꿔야 하고, 그럴 수 없는 환경이 되면 소아과 진료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병원은 귀한 1년 차 전공의 2명을 구했다. 작년에 지원자가 없어서 2년 차가 비어있던 상태라, 1년 차 지원자들에게 특혜와 복지(?)를 앞세워 로비 작전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새롭게 응급실 전담 소아청소년과 선생님 두 명을 구해서 꾸려나가고 있다. 응급실과 병실 당직 2명씩 스케줄을 짜려니 자리가 비게 되는 부분을 우리 과장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병실 당직을 서기로 했다. 나는 그래도 젊다고(?) 한 달에 2번을 서게 되었는데, 오늘이 그 두 번째 당직 날이었던 것이다. 3월부터 병원에서 당직을 서고, 병원에서 자려니 쉽지가 않았다. 병동에서나 신생아 중환자실 연락을 받고, 밤에 입원하는 환자들의 차트를 정리하고 진찰을 하고, 또 언제 연락이 올지 몰라 폰을 머리맡에 두고 자는 등, 모든 것이 쉽지 않았다. 3개월이 지나서부터 익숙해지긴 했지만, 다음 날 컨디션은 영 별로이다. 4년 차 선생님들이 시험 준비로 병원을 비우게 되는 내년 1월부터는 당직을 며칠 더 서야 한다는 사실을 마주하면 힘이 빠진다. 지금 대구 지역 모든 병원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이 0.75명을 기록했다는 뉴스를 보고, 내년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이 10% 대로 추락할 것은 아닌지 내심 불안하다.

이솝 우화 중에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를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위기의 소아청소년과, 절체절명의 소아청소년과에 대해 많은 선생님들이 말하고 있고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소아청소년과 인프라가 곧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지만, 정부는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로 치부하는 듯하다. 원작은 거짓말로 낭패를 본 것이라면, 우리의 경고는 진실이라서 낭패를 볼 것이다. 소아청소년과 처우 개선을 위해 위험을 부풀려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아프고 연약한 아이들을 돌보고 치료할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점점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다음 달 당직 날짜를 정해달라고 의국장이 두고 간 당직표를 우두커니 한동안 바라보았다.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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