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산에 산다. 사는 집은 시내에서 좀 더 깊숙이 들어간 자인면이지만 매일 아침 경산의 구도심에 있는 나의 직장처럼 되어버린 '미술중심공간 보물섬'으로 나온다. 이른 시간 버스를 타고 경산 시내로 향하는 20분은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가을로 접어든 이즈음이면 새벽 물안개가 자주 낀다.
경산은 미술계의 시각으로 보면 매력 없는 도시이다. 그래서 경산은 미술계의 '어떤 곳'에 불과하다. '어떤 곳'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지역을 뜻한다. 그러므로 '어떤 곳'에 사는 사람은 그곳에 산다는 자부심을 가지지도 않으며 관심도 없다.
'어떤 곳' 또는 '어떤 지역'에서 미술 활동을 하는 건 불리한 일이다. 대도시 중심, 수도권 지역 중심에서 벗어난 다른 지역은 미술계의 힘 있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외면당한다. 대구경북에 있는 미술대학 졸업생들의 많은 숫자가 수도권 지역의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일이 이제는 당연한 일이 될 만큼 청년 작가들의 지역 유출은 심각하다. 심지어 지역에 남은 청년들은 뒤처졌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이런 상황에 청년들이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기를 바라는 건 어렵다.
나는 미술계의 '어떤 곳'은 없다는 생각으로 경산의 '미술중심공간 보물섬'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 열리고 있는 전시는 대구경북에서는 흔치 않은 '보수'를 주제로 20대 후반 나동석 작가의 개인전이다. 이 전시의 외부 기획자로 선정된 황지원은 경산이 고향이다. 대구에서 대학을 다니고 대학원을 서울에서 마쳤지만, 보물섬의 기획공모전을 인연으로 그녀의 고향 경산에서 나동석 작가와 함께 전시를 만들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수많은 화살표가 그려진 '또 다른 행렬들'이라는 제목의 드로잉을 볼 수 있다. 많은 화살표가 무엇인가 궁금해지는데, 그 모양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과 대도시인 대구를 향하는 행렬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월영야행-숨어있는 자들'은 끝없이 눈치보는 눈동자의 움직임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뛰어도 뛰어도 그냥 제자리인 '산 아래 청년들'은 서글픈 이 지역 청년들의 자화상이다.
"비록 아름다운 이름이 없을지라도 그대의 영혼은 테두리면 테두리, 지점이면 지점, 모두가 아담이나 카이사르의 영토 못지않게 위대하다! 그러므로 그대 자기 세계를 건설하라!"고 에머슨은 그의 책 '자연'에서 말한다. 미술계에선 오랫동안 '어떤 곳'이었던 경산에서 20대 중후반의 작가와 기획자가 만났으며, 미술 기획과 비평을 꿈꾸는 두 명의 청년이 보물섬의 이 전시를 대상으로 평론을 준비 중이다. 어떤 곳의 어떤 전시가 되지 않기 위한 보물섬과 그에 동의하는 여러 작가, 기획자들의 공동활동이다.
경산이라서 가능한 것, 경산이기에 필요한 것을 생각한다. 대안공간이라는 거창한 간판이나 대안적 미술 활동이라는 무거운 말에 짓눌리지 않고 '이곳'이기에 해야 할 일을 찾아본다. 경산만이 아니라 대구경북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본다. 나의 눈과 생각을 이곳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모두 '이곳'을 통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한다. 역부족이면 모자라는 대로 자신으로 향하는 눈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보편적 문제에 민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혼자의 시간에 집중할 수 있고 그러면 또 다른 누군가의 동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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