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갑다 새책] 기록을 찍는 사람들

조현준‧전민규 지음/ 산지니 펴냄

대구 남산동 인쇄골목 내 한 업체의 작업 모습. 산지니 제공
대구 남산동 인쇄골목 내 한 업체의 작업 모습. 산지니 제공

"90년대만 하더라도 24시간 불 꺼지는 가게를 구경하기가 힘들었지요. 선거철 되면 철야작업 해야 되지, 동성로에 가게들 막 생기니깐 그때 홍보물 막 찍어 내지, 주변 관공서나 회사 할 것 없이 전부 인쇄 홍보니 책자니 만들어가 막 장사 열심히 할 때였으니깐. 그런데 갑자기 휴대폰으로 뭐 다 보는 시대가 되고 나이께네 종이 이거 찍어가 보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노? 인쇄도 이제는 사양사업(사양산업)이라 젊은 친구들도 일 안 배울라 카고, 우리도 뭐 이제는 인건비 맞출 정도로 많이 벌지도 못하고, 내 인건비도 안 나오는 상황이라 지금은 그래서 일 있으면 문 열고, 일 없으면 뭐 문 닫고 하는 거지 뭐. 그래서 언제 문을 열고 언제 문을 닫고 하는 경우가 따로 없어요. 일 있으면 다행이지 뭐."(책 속 인쇄업자의 말)

대구 중구 남산동, 이곳에는 '기록을 찍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인쇄골목이 있다. 종사자들에 따르면 한창 호황일 때 이 일대엔 2천여 관련 업체가 있었다. 인쇄 메카인 서울 을지로에 이은 두 번째 규모였다고 한다. 밤낮이고 종이 찍는 소리가 끊이질 않던 이 골목은 디지털 시대 도래 이후 그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산동 인쇄골목에선 여전히 종이 찍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인쇄업자의 어깨는 무거워지고 한숨은 깊어졌다.

대구 남산동 인쇄골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다룬 책이다. 두 지은이는 2년에 걸쳐 인쇄 골목 이곳저곳을 거닐며 종사자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변화한 골목 풍경을 기록해 책에 담았다.

특히, 20쪽이 채 안 되는 짧은 분량이지만 '대구 인쇄가 걸어온 길', '남산동과 인쇄골목의 역사와 현재'란 이름으로 대구 인쇄의 역사를 정리한 점이 눈길을 끈다. 1906년 대구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설립된 출판사 광문사부터, 일본인들이 권익을 보호하고 인쇄를 독점하기 위해 만든 경북인쇄조합, 전쟁 이후 대구로 피난 온 서울의 수많은 인쇄업체 등 대구의 인쇄 역사에서 빼놓으면 안 될 중요한 이야기를 꼼꼼히 기록했다.

쇠퇴의 길로 들어선 산업이 어떤 형태로 저물어 가는지를 파악하는 일은 향후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길잡이가 된다. 소멸의 예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재를 기록한 이 책 또한 지역 인쇄업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사료가 된다는 것. 두 지은이가 책을 낸 이유다. 312쪽,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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