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규제기본법'에 의하면 규제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특정한 행정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것으로서 법령 등 또는 조례·규칙에 규정되는 사항'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규제 개혁의 목적을 '불필요한 행정 규제를 폐지하고 비효율적인 규제의 신설을 억제함으로써 사회·경제활동의 자율과 창의를 촉진하여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가경쟁력의 지속적인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규제 개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듣게 되는 정부의 정책 슬로건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전봇대 뽑기'라고 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손톱 밑 가시 뽑기'라고도 했다. 비슷한 정책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것은 규제 개혁이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일 것이고, 여러 가지 명목으로 새로운 규제가 자꾸 만들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일선 의료인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의료인과 의료기관에 대한 행정 규제 및 그와 관련된 과도한 행정업무로 인하여 몸살을 앓고 있다. 물론 새로운 제도나 규제가 만들어질 때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문제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근무 인원과 시스템의 한계를 고려치 않은 과다한 행정업무 부담이 의료인들의 정신적, 육체적 피로도를 높여 환자 진료에 전념할 수 없게끔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진료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선 의료기관에 부과된 대표적인 행정업무로는 매년 실시해야 하는 법정의무교육이 있다. ▷개인정보보호 교육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아동학대 신고의무자 교육 ▷노인학대 신고의무자 교육 ▷긴급복지지원 신고의무자 교육 ▷성희롱 예방 교육 ▷결핵감염 예방 교육 ▷산업안전보건교육(병원급) 등이 그것이다. 법정의무교육을 이수하지 않을 경우에는 과태료 등 불이익을 받게 된다. 그밖에 ▷진단용방사선 안전관리책임자 교육 ▷구강검진실무자 교육 ▷의료폐기물배출자 교육 등 각종 교육과 ▷보건의료자원(인력·시설·장비) 신고 ▷적출물처리 자율 신고 ▷연말정산을 위한 의료비 자료 제출 등 각종 신고업무까지 의원급 의료기관이 감당해야 할 업무를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여기에다 진료 때마다 환자들에게 받아야 하는 서명 자료, 민간 보험 청구 서류 등 각종 자료 발급 업무, 최근 더해진 비급여 진료비용 정보 제출과 급여명세서 교부까지 해마다 진료 외 업무가 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이렇게 많은 규제가 만들어진 것은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 인권과 안전에 대한 인식이 크게 향상된 것에 기인한다고 하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떤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손쉽게 해결하려는 정부의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의료기관으로 하여금 '아동학대 신고의무자 교육', '노인학대 신고의무자 교육', '긴급복지지원 신고의무자 교육', '개인정보보호 교육', '성희롱 예방 교육' 등과 같은 단순 교육을 매년 실시하게 하는 것은 의료기관을 행정의 하수인 정도로 생각하거나 모든 의료종사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으며, 과도한 행정규제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정부가 만든 제도의 시행에 드는 비용과 행정부담을 의료기관에 고스란히 전가하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의료기관에 대해 우월적 위치에 있는 정부의 갑질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의사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최선을 다해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고, 언제나 최상의 치료 결과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의원급 의료기관의 의사에게 과도한 행정부담을 지게 하는 것은 우리나라 의료의 발전을 위해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최재갑 경북대학교치과병원 구강내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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