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한 달에 200억 달러 가까이 감소한 외환 보유고

금융정책 당국이 치솟는 환율 방어를 위해 달러를 쏟아부으면서 지난달 우리나라 외환 보유액이 한 달 만에 197억 달러나 감소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3년 11개월 만에 나타난 최대 감소 폭이라는데 예사로 지나치기 어렵다. 우리 정부가 환율을 잡겠다며 이처럼 시장에 대대적으로 개입했는데도 결과적으로 환율 폭등을 잡지 못해서 더 그렇다.

자칫하다가는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다시 맞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시중에서 나돈다. 지난달 27일 블룸버그통신이 글로벌 달러 초강세 여파로 아시아 외환위기 가능성이 있으며 한국의 원화와 태국의 바트화를 가장 취약한 통화로 꼽았으니 기우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최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긴급 브리핑을 열고 "우리나라에서 경제위기가 재발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외부 시각"이라고 밝힌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그의 이런 행보는 대한민국에 외환위기가 닥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지만 대내외 경제 상황이 하도 안 좋은 까닭에 정부의 경제 사령탑으로서 진화 라인을 그으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와 많이 다르다. 9월 말 현재 4천167억 달러의 외환을 가진 우리나라는 세계 8위의 외환 보유국이다. 외환 보유액이 204억 달러까지 떨어진 1997년과는 내구력이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경제는 심리라고 했다. 실물 경제와 펀더멘털이 아무리 튼튼해도 방심하다가는 해외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고 금융시장이 한순간에 나락에 빠질 수 있다. 게다가 무역수지가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6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한 것은 걱정스럽다. 금리를 미국보다 선제적으로 올려서 환율 급등에 대비해야 하지만 1천800조 원에 이르는 가계대출 때문에 쓸 수 있는 카드도 마땅찮다.

우리는 국경을 넘나드는 환 투기 세력이 세계에서 가장 약한 고리부터 파고들어 특정 국가의 통화·금융 시스템을 초토화시킨 사례를 수차례 보았다. 우리나라가 환 투기 세력의 먹잇감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최악을 가정해야 최악을 피할 수 있다. 정부는 비상한 인식을 갖고 대응하기 바란다. 과도한 불안은 금물이지만 그런 시장 불안이 형성되지 않으려면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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