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요초대석] 끝나지 않는 불황 없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강대국의 네 가지 무기는 제조, 무역, 기술, 금융이다. 미국이 세계의 공장인 중국을 제조와 무역으로 좌초시키려다 실패했다. 지금 미국은 다시 기술로 중국을 좌초시키려고 '산업의 쌀'인 반도체 기술을 통제하고 있다. IPEF, Chip4, 반도체법, 대중 첨단 반도체 장비와 AI 반도체의 수출 통제 등의 조치를 쏟아 내고 있다.

미국은 이미 제조와 무역의 창은 써 버렸고 기술의 창으로 세계와 중국을 통제하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 기술마저 40년 전에 집을 나가 버려 동맹이 아니고는 혼자서 중국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공업혁명 이후 모든 첨단기술의 시발역과 종착역은 같은 적이 없었다. 공업혁명 이후 철강, 자동차, 가전, 통신,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기술의 시작은 영국과 미국이었지만 종착역은 모두 아시아였다.

미국은 천문학적 보조금으로 그리고 강력한 대중 수출 통제를 통해 40년 전 집 나간 반도체를 미국으로 유턴시키려고 하지만, 보조금으로 공장을 지을 수는 있어도 시장을 만들 수는 없다. 공장은 시장 가까운 곳에 짓는 것이지 보조금 많이 주는 데 짓는 것이 아니다.

종착역에 도달한 기차를 경제 논리가 아닌 정치 논리로 다시 시발역으로 불러오는 것은 중력의 법칙에 거꾸로 가는 것이고 무리수를 두면 실패의 확률이 높다. 지금 전 세계 반도체 소비의 63%가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동맹국들은 미국을 따르자니 돈이 울고 시장을 따르자니 의리가 운다. 그러나 국제관계에서는 법보다는 주먹이 빠르고 의리보다는 돈이 앞선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치료약으로 잡은 것이 아니라 달러 프린터로 잡은 미국을 따라 한 세계는 천문학적 규모로 풀어 놓은 통화의 보복이 두렵다. 코로나에 대한 확실한 치료약도 백신도 아직 없는 세상에는 여전히 살아남은 코로나의 잔재들이 전 세계를 어슬렁거린다.

각국의 금융 당국이 경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지금 세계 금융시장은 19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만이 명명한 '바보들의 샤워'가 연상된다. 바보들이 샤워할 때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으면 기다리지 않고 확 틀어 버리고, 뜨거운 물이 쏟아지면 이번에는 찬물을 확 틀어 버려 목욕탕을 난리통으로 만드는 현상이다. 이번에도 미국의 금융 당국은 경기 침체를 일으키지 않고 인플레를 잡을 생각이 없다. 미국 금융 당국은 성장 침체(growth recession)가 나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인플레만 잡으면 된다는 정책을 쓰고 있다.

좋은 일은 혼자 오고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 힘이 약해진 초강대국 미국과 힘이 세진 강대국 중국은 자국 이기주의(me first)에 서로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시장 논리가 아닌 정치 논리로 동맹과 군사 외교력을 동원해 무리하게 공급망의 혼란을 만들면 지난 30여 년간 구축된 세계화의 복수가 기다린다.

세상이 온통 전쟁이다. 미국은 반도체의 무기화를 시작으로 반도체 전쟁을, 러시아와 중동은 석유의 전쟁화를 통해 에너지 전쟁을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의 금융 당국은 바보들의 샤워를 경쟁적으로 하고 있다.

악마는 약한 놈부터 잡아먹는다. 세계경제에 혹독한 겨울이 닥쳐 오고 있고 2023년에 세계적인 경착륙을 피하기 어렵다. 미국이 금리를 올릴 때마다 아시아, 중남미, 중앙아시아, 유럽의 부채 구조가 좋지 않고 경상수지가 취약한 나라는 예외없이 줄부도가 났다. 이번에도 예외 없다.

그러나 끝나지 않는 불황은 없다. 4년 주기 경기 주기, 대략 상승 2년 반 하강 1년 반이다. 내년 상반기까지가 죽음의 계곡이다. 미국이 기세 좋게 금리를 올리지만 제로 금리에서 연간 미국 정부의 이자 부담이 2천500억 달러 수준인데, 4.5%까지 올린다면 이자 비용만 미국 세수의 4분의 1 이상이 들어가야 한다. 미·중의 갈등도 10월의 중국 당대회, 11월의 미국 중간선거 결과가 중요한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새벽이 항상 어둡다. 회복은 비관의 절벽을 타고 아무도 모르게 슬금슬금 오른다. 기술전쟁 시대 기술이 경쟁력이고 불황에는 현금이 왕이다. 바보들의 샤워에 찬물을 피해 생존하는 것이 첫째다. 고장 난 시계처럼 4~5년마다 등장하는 뒷북 일색인 비관론자들이 넘쳐 나면 이미 불황은 중반이 넘었다. 비관 일색 경기 전망의 공포에 휩싸일 것이 아니라 내년 하반기 경기회복에 어떤 기술로 어떤 제품으로 회복 사이클을 탈 것인지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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