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업, 기업인!] <13>김청한 동신건설 회장 "직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

"신의 덕분에 실패해도 재기했다"
흙수저 출신에 모진 가난 겪어…중학교 졸업 후 허드렛일까지
부채 떠안고 인수했던 회사, 결국 부도…그래도 빚 다 갚아
SOC·토목·건축 사업 등 수행…대통령 표창에 신용등급 최고

맨손으로 시작한 사업이 건실한 중견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어릴 적 가난으로 끼니를 걱정했지만 집을 떠난 후에는 고향의 들판과 강, 산이 전해준 푸근함과 정감이 고생을 견디게 한 동력이 됐다.

"집안의 일꾼을 잘 섬겨야 집안이 잘 된다" "사람은 문필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윗대 어르신들의 가르침이 기업 경영과 교육 사업에 대한 철학을 만들고, 그렇게 실천하는 삶을 만들었다.

15년 동안 대한건설협회 경북도회장을 지낼 때는 정부를 상대로 중소건설업을 위한 공동도급이 제도적으로 정착되도록 했다. 300억원이 넘는 공사 경우 대기업과 지역업체가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했던 일이 큰 자부심으로 남아있다.

동신건설 회장, 백암교육재단 이사장으로 고향에 돌아와 여생을 봉사와 지역사회 발전에 나서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있는 김청한 회장에게 60년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업가의 소신과 철학을 들었다.

김청한 동신건설 회장은 윗대 어르신의 가르침에 욕되지 않게 살고 싶다고 했다. 엄재진 기자
김청한 동신건설 회장은 윗대 어르신의 가르침에 욕되지 않게 살고 싶다고 했다. 엄재진 기자

-아주 어릴 적에 안동을 떠나 대구에서 살았다고 들었다.

▶안동시 임하면 산골짝에서 태어났다. 요즘 말로 철저한 흙수저였다. 할아버지 때부터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지만, 당시 누구도 피해 가지 못할 굶주림과 배고픔을 겪어야 했다.

8살 되던 해에 가족들 모두 고향을 떠났다. 대구 동촌으로 이사를 갔다. 대구에서 어릴 적 삶도 만만치 않았다. 중학교 다닐 때까지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할 정도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건설현장이나 식당 허드렛일, 길거리 사과 좌판 등으로 직접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배움을 멈출 수는 없어 뒤늦게 대구공고 토목과에 입학했다. 거기서 배운 기술로 취득한 2급 자격증이 새로운 인생의 종잣돈이 됐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형편은 꿈도 꾸질 못했다. 2급 기술자격증으로 부산시 공무원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부산대 토목과 야간에 다니면서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던 '문필'을 배우고 익히는데 노력했다.

-건설 사업과는 어떻게 인연이 됐는가?

▶부산시에서 2년 정도의 공무원 생활 동안 각종 측량과 설계 등 현장 기술을 익혔다. 그러다가 군에 입대했고, 1969년쯤 제대했을 무렵이었다. 선친께서 어느 날 부도난 건설회사를 덜컥 인수해 버렸다.

당시 3천만원이 넘는 부채를 떠안고 인수했다. 처음에는 얼떨떨했지만 공무원 생활 동안 얻은 경험으로 토목, 건축 면허를 취득해 본격 운영하기 시작했다.

선친께 경영을 배웠다. 회사를 맡아서 운영하면서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고, 신의와 의리를 잃지 않는 사람이 되자는 각오로 일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적 없고, 약속시간에는 늘 미리 도착하는 삶을 살고 있다.

할아버지께서 어릴 적 해주신 말씀을 경영 철학과 삶의 지렛대로 삼고 있다. "사람은 문필을 갖춰야 한다", "일꾼을 잘 챙겨야 집안이 잘 된다"는 말씀이셨다.

지금까지 사업을 하면서 가장 중요시 여긴 게 사람이다. 직원들이다. 직원들에게 많은 투자를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업계 최초로 전 사원 연봉제 실시였다. 직원 한 사람당 많게는 1천만원이 넘는 임금인상 효과를 주었다.

김청한 동신건설 회장은 윗대 어르신의 가르침에 욕되지 않게 살고 싶다고 했다. 엄재진 기자
김청한 동신건설 회장은 윗대 어르신의 가르침에 욕되지 않게 살고 싶다고 했다. 엄재진 기자

-사업을 어떻게 키워 왔는지, 경영에 어려움은 없었는지?

▶얼떨결에 맡은 건설회사를 운영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인수하면서 떠안게 된 부채였다. 3천만원이 넘는 빚을 갚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당시 고리의 이자를 갚으면서 회사를 운영해야 했다.

어느 날 600만원의 수표가 돌아왔는데, 300만원 밖에 구하지 못했다. 당시 돈을 빌려주던 선친의 친구분으로부터 "더 이상 버티지 말고 부도 처리해라"는 말을 듣고 첫 번째 좌절을 맛보았다. 사람들과 약속했던 신의를 생각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부도처리 이후에도 진 빚에 대해서는 외면하지 않고 모두 갚아 나갔다. 신의를 버리지 않아야 제기할 수 있다는 또 다른 각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1973년 6월 동신건설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해 재기의 기틀을 마련했다.

당시 선친께서는 좌절하는 내게 "너는 애초부터 빈손이었다. 지금의 실패를 거울로 삼아라. 끝까지 최선을 다해 신의를 지켜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내가 재기할 수 있도록 해 준 큰 용기와 삶의 지표가 됐다.

-동신건설에 대해 소개를 해주신다면?

▶SOC사업과 토목사업, 건축사업, 문화재 공사, 전기 공사, 환경 공사, 소방 공사 등과 관련된 사업을 수행하는 건실한 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부 시책과 관련한 BTL(임대형 민자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서울~인천 간 고속도로 건설, 경기 성남 판교 택지개발사업,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상징 건물, 안동댐 건설에도 대림건설과 함께 참여했다.

이 밖에 각종 학교 및 병원 건물을 많이 지었다. 특히 안동의료원 등 병원 건물에는 복도를 넓게 하고, 환자들을 생각하는 동선을 담아내 전국적으로 병원 신축 의뢰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1988년 3월 조세의 날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1994년 3월 조세의 날 석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2003년 8월에는 ISO 14001 환경시스템 인증 등록을 했다. 2008년 8월 건설공제조합에서 실시한 신용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AAA등급을 받았다. 지금까지도 신용등급은 최고 등급으로 인정받고 있다.

김청한 동신건설 회장은 윗대 어르신의 가르침에 욕되지 않게 살고 싶다고 했다. 엄재진 기자
김청한 동신건설 회장은 윗대 어르신의 가르침에 욕되지 않게 살고 싶다고 했다. 엄재진 기자

-고향 안동으로 귀향해 교육사업에 투자한 이야기를 해주신다면?

▶선친께서는 80년대 말에 고향에 들어오고 싶어 했다. 기업이 성공하면 국가와 지역사회에 헌신해야 한다는 철학으로 고향 안동으로 돌아왔다. 동신건설 본사를 안동으로 옮기고 지역사회를 위한 의미 있는 사업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 선친께서 당시 운영자가 법적으로 문제가 돼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인 한 고등학교 소식을 듣고 부도난 건설업체를 덜컥 인수할 때처럼 계약서를 가져왔다. 1989년 일이다. 선친(김의진)의 호를 따 '백암교육재단'을 설립했다.

당시 건설회사를 다 팔아도 안될 금액에 인수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3개월치나 밀려있던 교사와 교직원들의 임금부터 해결했다. 본관 건물도 새로 지었다. 유치원도 세우고, 새마을금고도 설립했다.

지금 경북하이텍고등학교는 안동 최고의 학교로 자리 잡았다. 학생 450명, 교사 및 직원 50여명으로 운영된다. 해마다 75%에 달하는 취업율을 자랑하고 있다.

올 해는 국방부와 협약해 부사관을 양성하고 있다. 공병과 전자 분야에 42명이나 합격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대구 상공위원도 했다. 새마을중앙회 경북도회장을 하면서 사회봉사 활동에도 나섰다. 건설업에 뛰어든 이후 60년을 쉼 없이 달려오면서 정직과 신의를 잃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선친께서 늘 주문하셨던 '품위유지, 어르신 공경'의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다.

선친의 호를 딴 '백암'이 욕되지 않도록 여생을 살고 싶다. 앞서기보다는 뒤에서 지역사회 인재를 발굴하고, 지역 일꾼들이 역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

미술품 수집이 취미다. 안동에 작은 미술관을 지어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도 전시하고, 지역 미술인들의 창작지원과 전시 등 활동을 지원하는 게 작은 꿈이다.

안동 김씨 호장공파 회장으로, 호계서원 원장 등 전통과 유교적 삶의 실천을 통해 한국정신문화가 현대사회의 고질적 병폐를 다스릴 수 있는 대안이 되는 삶을 살고도 싶다. 사업도 사람이 하기 때문에 '사람이 먼저'라는 유교적 사상을 항상 가슴에 담고 있다.

김청한 회장
김청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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