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이 그린 그림 한 장을 두고 나라가 시끄럽다. 어처구니없고 황당무계하며 한심한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 세상이라 입도 뻥긋하기 싫은 요즘이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몇 마디 쓴다.
상상력과 풍자정신이 넘쳐 나는 순수한 아이의 그림을 두고 타락한 어른들이 별소리를 다 해 대며 아이를 죽이기라도 할 듯이 설쳐 대는 꼴들이 정말 가관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제 마음에 안 든다고 말은 못 하고 표절이라서 문제라는 핑계를 댄다. 외국의 원작자가 표절이 아니라고 하는데, 우물 안 개구리 꼴로 자기들끼리 표절이니 뭐니 하며 야단법석이다. 외국이 아니라 국내의 원작자가 표절이라고 하는데도 아니라고 씌우는 자들이 외국 작품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사대주의 탓인지 작가가 표절이 아니라고 해도 표절이라고 우겨 대니 참으로 가관이다. 한마디로 학문이나 예술은 물론 법도 제대로 모르는 자들이다. 아니 상식이 없는 자들이다.
그보다 더 치를 떨게 하는 것은 크는 아이를 죽이려는 어른의 무도함과 잔인함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크는 아이의 상상력과 풍자정신을 키워 주지는 못할지언정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갖은 악행을 일삼는다니, 이게 어른이 할 짓인가? 아이를 키워 보지도 않았는가? 그야말로 자유가 없으면 예술이 제대로 피어날 수 없다. 그것도 이제 갓 시작한 아이의 작품이 아닌가? 무한한 상상력의 나래를 펼쳐야 할 때가 아닌가? 아이의 상상력을 죽이면 나라의 미래가 없다.
어른이란 자들이 서로 지지고 볶는 데 관심이 없어진 것은 벌써 옛날부터다. 아니 누구 말마따나 바빠서 관심 둘 시간이 없다. 내가 23년 전 시골에 처박혀 세상살이와 담을 쌓는 이유도 권력을 둘러싸고 싸우는 '꼬라지'를 보기 싫어서다. 그 전에는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고 많이 싸웠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데모' 했다고 잡혀 가서 몇 날 며칠을 얻어터지고 몇 년 전까지도 신문에 쓴 손바닥 크기의 칼럼 때문에 몇 번이나 불려 다니며 새파란 나리들에게 당했다. 생각하면 더러운 세월이었다. 더러운 시대를 사니 더럽게 당할 수밖에 없었지만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시골 무지렁이로 늙어 가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 누구는 늙어서도 화려하게 출세하는데 뒷방 늙은이처럼 산다고 무시하며 타박하는 자들도 있지만 늙어 보니 알겠다. 곱게 늙으라는 말의 의미를. 늙어서도 자기가 대단한 인간이라도 되는 양 권력을 탐내며 그 자리에 맞는 인간은 자기밖에 없다는 식으로 으쓱거리며 막말을 해 대는 늙은이들, 젊은 애들의 몫을 가로채려고 욕심 부리는 늙은이들은 얼마나 추잡하냐.
그래도 아이들한테는 이러지 말자.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마라'. 내가 20년 전에 낸 책의 제목이다. 그 책을 내고 2년 뒤에 어느 유명 탤런트가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라는 책을 냈다. 나는 그 제목이 내가 쓴 책의 제목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좋은 말이라고 생각해 표절 시비는 하지 않았다. 도리어 이번 표절 시비에서 외국 원작자가 표절이기는커녕 훌륭한 작품이라고 칭찬해 준 것처럼 좋은 책을 썼다고 칭찬했다. 앞으로도 누가 그런 제목으로 책을 쓴다고 해도 표절 운운할 생각이 조금도 없이 칭찬할 생각이다. 내가 쓴 책 중에 좋은 제목이 많다. 가령 언젠가 텔레비전 드라마에 소개된 적도 있는 책으로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가 있다. 그 제목 그대로 누가 자전거 타기를 권하는 책을 쓰면 참 좋겠다.
이번의 표절 시비는 참 얍삽하다. 아이의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싫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왜 표절이니 뭐니 헛소리하는가? 창피를 주기 위해 수사랍시고 불러 조지거나 압수한답시고 법석대지도 말고 처음부터 그만두어라. 어른이면 어른답게, 최소한 아이들에게는 부끄러운 짓을 하지 마라. 이제 희망은 아이들뿐이다.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마라. 신체에 가하는 물리적인 폭력만이 폭력이 아니다.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 한마디도 폭력이다. 내가 그 아이에게 용서를 빈다. 넌 표절한 게 아니야. 잘 그렸어.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만들어 줘. 열심히 해서 훌륭한 화가가 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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