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은 이미 드라마의 원작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믹하고 황당하기까지 한 병맛 코미디 웹툰의 드라마화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가우스전자'는 이제 이 분야 역시 별 이물감 없이 리메이크되고 있는 변화의 징후를 보여준다.
◆병맛 코미디의 세계
재벌2세지만 아버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서겠다는 포부로 가우스전자 마케팅3부로 오게 된 신입사원. 그의 이름은 백마탄(배현성)이다. 신입사원을 뽑는 시즌도 아닌데 들어온 이 인물에 마케팅3부 사람들은 '낙하산'을 의심한다. 백마탄이 '낙하산'이라는 걸 팀원들이 알면 어떻게 되겠냐는 위장병(허정도) 부장의 말에 최달순(김지성) 이사는 "어허 낙하산이라니? 말조심해!"라고 일침을 놓는데, 창밖으로 진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백마탄이 보인다. 웹툰에 등장할만한 이런 장면은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가우스전자'의 색깔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건 바로 웹툰에서나 볼만한 '병맛 코미디'의 세계를 드라마로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백마탄이라는 이 재벌2세 캐릭터는 원작 웹툰보다 훨씬 더 나간 병맛을 보여준다. 즉, 드라마에서 백마탄은 스스로 아버지에게 이른바 '경영자 수업'을 하기 위해 경쟁 기업인 가우스전자에 사원으로 들어가 하나하나 경험을 쌓겠다고 하지만, 웹툰에서는 아버지가 거꾸로 백마탄에게 그 사원 체험을 이겨내야 2세의 자리를 내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래서 웹툰이 그리는 백마탄은 훨씬 자발적 의지를 가진 인물이지만, 드라마 속 백마탄은 훨씬 병맛이 강조된 풍자적인 캐릭터에 가깝다. 직장인들의 출근을 체험하겠다고 버스를 탄다면서 비서가 운전하는 '전세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백마탄의 모습은 이른바 '서민 코스프레'하는 재벌 풍자로서 웃음을 준다.
이런 점은 '가우스전자'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이상식(곽동연)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이상식은 첫 회에서 가우스전자의 역사를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을 올린 일로 마케팅3부를 발칵 뒤집어 놓는다. 그 영상에는 친일파의 노비였던 창업주가 훔친 땅문서를 기반으로 가우스전자가 세워졌고 카라멜 밀수와 동두천 PX에서 시바스 리갈을 빼돌려 지금의 회사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우스꽝스럽게 담겼다. 가우스전자의 역사를 자랑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대놓고 디스하고 풍자하는 영상이었던 것. 웹툰에서 이상식은 어딘가 어리버리해 직장 동료들에게 호구 잡히며 당하는 인물이지만, 드라마에서 이상식은 눈치가 없어 오히려 대놓고 회사 경영진은 물론이고 상사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인물로 그려진다.
언제 '폭탄 발언'을 할지 알 수 없어 감사팀이 뜨게 되자 마케팅3부 팀원들이 그를 꽁꽁 묶어 입을 가린 채 비품실에 가둬둠으로써 생겨나는 해프닝은 웹툰에서는 볼 수 없던 훨씬 더 과장된 병맛 코미디 상황을 그려낸다. 손이 묶인 채 비품실을 빠져나가려다 넘어져 이빨이 빠지고 입술이 퉁퉁 붓게 된 이상식이 마침 걸려온 전화에 대해 안 나오는 발음으로 "십분만 기다려줘"라고 하는 말이 "○○년 기다려 더"라는 말로 잘못 찍혀 만들어지는 원초적인 웃음이 그것이다. 이런 장면은 현실성이 있기보다는 웃음을 주기 위한 병맛 코미디 웹툰에서 자주 보이기도 하는 과장된 표현인데, 흥미롭게도 원작 웹툰이 하지 않은 이런 표현을 리메이크 드라마가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무얼 말해주는 걸까. 웹툰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이제는 드라마가 웹툰적인 표현을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달라진 변화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웹툰 하던 병맛 코미디 수용
사실 한 때 드라마에서 "만화 같다"는 표현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곤 했다. 그래서 만화나 웹툰 원작을 드라마화할 때 가장 전제해서 봤던 건 '리얼리티'였다. 초창기 허영만 화백의 '식객' 같은 만화들이 영화, 드라마로 리메이크되어 괜찮은 성적을 냈던 건 원작 자체가 가진 취재 기반의 리얼리티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생' 같은 작품이 웹툰으로도, 드라마로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마찬가지의 이유였다. 하지만 이러한 만화 혹은 웹툰은 그 저변이 넓혀지면서 상상력 역시 조금씩 허용범위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제작규모가 커지고 판타지나 장르물들이 많아지면서 이러한 상상력들을 수용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맛 코미디처럼 훨씬 과장된 표현들이 맛을 내는 웹툰은 이미 성공한 명작이라고 해도 영화나 드라마가 리메이크에 부담을 갖는 분야였다. '마음의 소리' 같은 조석 작가가 2006년에 연재를 시작해 2015년에 1천화를 넘긴 베스트셀러 웹툰은 2016년에야 비로소 시트콤으로 제작되었고, 역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엄청난 인기와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김규삼 작가의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2019년에야 비로소 드라마로 리메이크됐다. 그만큼 병맛 코미디 웹툰의 드라마 리메이크는 수용되는 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중요한 건 웹툰이 가진 병맛의 세계를 어디까지 과감하게 드라마가 수용하고 연출해낼 수 있고, 그것을 시청자들이 얼마만큼 수용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웹툰의 병맛으로 고스란히 드라마 연출 속으로 구현해냈고, 그것이 시청자들의 좋은 반응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작품이었다.
'가우스전자'가 담고 있는 웹툰보다 더 세진 병맛과 과장된 표현들은 바로 이러한 흐름 위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제 웹툰 코미디는 그만큼 대중들에게 익숙해졌고, 과거 리얼리티에 집중하던 데서 점점 벗어나 상상력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드라마 역시 이를 적극적으로 연출 속에 담기 시작했다.
◆빵빵 터지는 웃음 뒤의 세태 풍자
'가우스전자'의 코미디는 그래서 더 과감해졌다. 웹툰이 가진 병맛보다 때론 더 센 특정 상황들을 과장된 표현으로 담고 있다. 여기에는 남다른 제작진의 참여도 작용하고 있다. 이 작품은 과거 KBS '개그콘서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서수민 PD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했고, Mnet의 페이크 다큐 '음악의 신2'의 박준수 PD가 연출을 맡았다. 앞서 살짝 소개했던 이상식이 비품실에 묶여 벌어지는 해프닝 같은 코미디 상황은 그래서 이러한 코미디 기획과 연출이 익숙한 제작진의 색깔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빵빵 터지는 상황 코미디의 중심이 되고 있는 캐릭터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담겨진 세태 풍자가 느껴진다. 예를 들어 회사 내 자판기로 부수입을 챙기며 살고 있는 어딘가 쫀쫀한 현실 느껴지는 기성남 차장(백현진)이 재벌 2세인 줄 몰라보고 백마탄이 부모도 없고 빚쟁이에 몰리는 청춘이라 생각해 밥을 사주고 회사 비품을 슬쩍한 휴지도 챙겨주는 그런 장면이 주는 헛헛한 웃음이 그렇다. 물론 드러내놓지는 않지만 웃기는 마케팅3부 사람들의 웃음에서 느껴지는 축축함은 바로 거기 더해져 있는 현실의 무게 때문이다.
'가우스전자'는 또한 '개그콘서트'가 폐지된 후 이제 코미디의 명맥이 다양한 매체와 장르 속으로 분화되어 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많은 개그맨들이 유튜브로 진출해 그 곳에 '스케치 코미디' 같은 새로운 길을 열고 있는 것처럼, 과거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을 했던 제작진들은 '가우스전자' 같은 드라마로도 들어와 코미디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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