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개봉된 독일 영화 '콜리니 케이스'(Der Fall Collini)는 '드레허 법'(Dreher-Gesetz)을 소재로 한 법정 스릴러다. 한 평론가는 괴물에게 분노할 수 있고, 영웅과 동행할 수 있는 영화라고 평했다. 주인공 콜리니는 대기업 회장 마이어를 권총으로 잔인하게 살해한다. 살해 증거는 명백하나 일체의 진술을 거부하여 범행 동기가 오리무중이다. 자백 직전까지 갔으나, '법정과 바다에서는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다'는 피해자 유족 변호사인 마팅거 교수의 말대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1944년 초여름 이탈리아 피사에서 레지스탕스 습격으로 독일군 2명이 살해당한다. 나치 친위대 소령인 마이어는 그 열 배에 해당하는 민간인 학살을 명한다. 주민들이 희생자로 끌려 나왔다. 마이어는 아버지가 무고하다고 울부짖는 열 살짜리 콜리니를 한 팔로 움켜잡고 '오늘 용기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고 말한다. 콜리니 목전에서 아버지는 총살당했다. 콜리니는 1969년 마이어를 고소하였으나 검찰은 드레허 법에 따라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57년이 지난 2001년 콜리니는 마이어가 한 말을 그대로 돌려주면서 사적 복수를 하였다.
드레허 법은 1968년 5월 24일 독일 연방의회에서 통과되었다. 연방 법무부 형사사법부 국장이던 드레허는 경미한 범죄를 행정질서벌로 바꾸는 이 법안의 작성자였다. 친나치 성향의 그는 156개 조항의 방대한 초안에 몇 줄짜리 독소 규정을 끼워 넣었다. 그것은 바로 '정범의 범죄 성립에 필요한 특별한 개인적 특성이 결여된 공범은 형을 감경하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규정은 3만7천600명의 유태인을 색출해 아우슈비츠로 보낸 하인리히 재판에 적용되었다. 그는 법정형이 무기징역형인 모살(謀殺·Mord)로 기소되었다.
그러나, 독일연방법원은 '하인리히가 관여한 희생자들이 인종적 증오로 살해되었지만, 그는 정범인 나치 수뇌부의 명령에 복종한 공범이기에 모살죄의 성립에 필요한 인종적 증오라는 동기를 공유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법정형이 낮은 고살(故殺·Totschlag)로 인정되었고, 1960년 5월 8일 15년의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고 판결하였다. 히틀러(Hitler), 히믈러(Himmler) 등 민간인 학살의 정범인 나치 수뇌부를 제외한 수천 명의 학살 전범이 공범으로 면책되었다.
드레허는 처음부터 민간인 학살에 가담한 나치 전범들이 이 규정에 따라 공소시효로 혜택받을 것을 의도했다. 그러나 연방의회 의원들은 그 의도를 알지 못하였고, 별다른 토의 없이 만장일치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괴물 같은 규정이 무해한 둥지에 위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트로이 목마 입법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뻐꾸기가 다른 조류의 둥지에 알을 낳아 부화를 시키는 탁란(托卵)을 하듯 탁란 입법을 한 셈이다.
드레허 법은 독일 사법사에서 가장 심각한 입법 스캔들로 꼽힌다. 우리 사법사에서 최악의 입법 스캔들은 '처럼회'가 주도한 검수완박법일 것이다. 두 입법은 '형벌의 좌절'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처벌할 수 있는 범죄의 방치는 국민의 정의감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두 법의 입법과정은 다르다. 드레허 법은 제3자인 드레허가 괴물 같은 규정을 무해한 것으로 위장하고 의원들을 속인 결과다. 반면 검수완박법은 처럼회의 주도로 다수당 의원들이 '다수결의 원칙'을 스스로 파괴한 결과다. 자유민주국가 의회의 기본 원칙을 짓밟고 태어난 법이다.
법사위 안건조정위는 여야 동수로 구성되었고, 과반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90일의 숙의 기간이 보장되어 있었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 출범 불과 24일 전에 발의된 검수완박법안은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시 국회 통과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은 소속 의원을 위장 탈당시켜 무소속으로 신분을 세탁하였다. 안건조정위 실질적 구성을 여야 4대 2로 바꾸어 숙의 기간을 없애고 7분 만에 법안을 처리했다.
이런 절차적 하자는 일반 단체의 결의라면 이론의 여지없이 무효가 될 중대하고도 명백한 사유이다. 특정 정권이 드레허 법을 만들 때 거기 있었다는 이유로 비난하지 말라고 항변하던 마팅거 교수는 그때는 비겁했지만 이제는 용기를 보여 달라는 경력 3개월 된 국선변호인의 호소에 '드레허 법은 우리가 믿는 법질서가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검수완박법에 대하여는 어느 누가 용기를 보여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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