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쯤 된 아이가 질문한다.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생화학자인 아버지는 씩 웃는 얼굴로 단언한다. "의미는 없어!" 혼돈만이 우연히 우리를 만든 것이자 언제라도 우리를 파괴할 힘이다. 너는 중요하지 않아, 아버지에게는 오히려 멋대로 살 이유가 된 말이었지만 룰루 밀러에게는 다른 효과를 냈다.
어린 나이에 인생의 의미를 스포일러당한 저자는 우울, 자기파괴와 상실을 거쳐 데이비드 조던의 행적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분류학자로 평생 어류 종에 이름을 붙였으며, 지진으로 표본이 담긴 유리병이 모두 깨져 버리자 표본의 피부에 이름표를 꿰매 버린 사람이다.
룰루 밀러는 과학 전문 기자로 방송계의 퓰리처상인 피보디상을 수상하였으며 15년 넘게 미국공영라디오방송국에서 일했다. 논픽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런 이력을 증명하듯 탄탄한 구성과 자료, 예상하기 힘든 전개로 몰입감을 더한다. '전기이자 회고록이자 과학적 모험담'이라는 소개처럼 혼돈에 맞서려 한 분류학자의 전기인 동시에 저자가 혼돈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담긴 자서전이다.
저자는 조던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엉망이 된 인생에서 질서를 찾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이 책은 제목에 중요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다. 어류라는 종 분류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생물의 계층구조에 대한 믿음을 놓을 수 없던 분류학자가 진실을 기만하면서 이야기는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향한다.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하나의 주문과 하나의 속임수, 바로 희망에 대한 처방이다. 나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을 얻었다. (중략)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263쪽)
이 책은 단순히 조던의 전기로 끝나지 않는다. 그가 해내지 못한 일을 저자는 해냈기 때문이다. 진리의 불확실성, 죽음 이면의 삶, 부패 이면의 성장을 보게 된 것이다. 밀려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대하자 혼돈은 저자에게 희망을 약속한다.
스포일러는 내용을 미리 알려 보는 재미를 크게 떨어트리는 말이나 글을 말한다. 하지만 들어서 아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아버지의 말을 딛고 저자는 자신만의 의미를 찾았다. 이 책의 재미도 여전하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을지 호기심과 의심으로 펼쳐 보길 바란다.
박선아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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