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소설가 김연수가 오랜 침묵을 깨고, 신작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출간했다. 전작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이후 9년 만에 펴내는 여섯 번째 소설집이다. 작가는 최근 2, 3년간 단편 작업에 매진한 끝에 표제작을 비롯한 8편의 이야기를 선보인다.
이번 소설집은 어두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향해 담담한 위로를 건넨다. 어찌할 수 없는 비극을 마주했을 때, 인식의 방향을 바꿔 희망의 길을 찾는 방법론으로 읽히기도 한다. 각 단편은 '상실'과 '시간', '바람'이란 키워드와 엮여 이야기를 그려낸다.
표제작인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지구에 종말이 올 것이라는 예언으로 떠들썩했던 1999년 여름을 배경으로 한다. 대학생인 '나'는 이성 친구인 '지민'과 동반자살을 계획한 가운데, 출판사 편집자인 외삼촌을 찾아간다. '재와 먼지'라는 판매 금지된 책을 찾기 위해서였다.
'재와 먼지'는 지민의 엄마가 자살하기 전 쓴 책이다. "1972년 10월을 우리는 시간의 끝이라고 불렀다"고 시작하는 이 책은 당시의 시대상과 맞물려 판매가 금지됐다. 이 일을 계기로 지민의 가족들은 엄마를 정신병자로 몰아갔고 그녀는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이는 대학생에 불과한 지민이 극도로 염세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 배경으로 추정된다.
'나'의 외삼촌이 전해주는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반자살을 택했다가 두 번째 삶이 시작된 연인이 있다. 두 번째 삶의 시간은 미래에서 과거로 흐른다. 이윽고 그들은 처음 만났던 그 순간에 도착한다. 첫 만남의 설렘과 기쁨을 생생하게 느낀 그들은 오랜 잠에서 깬 듯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세 번째 삶이 시작된다.
소설의 내용을 말한 뒤, 외삼촌은 상실감과 무력함에 빠진 지민에게 조언을 한다. 인식의 패턴을 바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원인이 되어 현재의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해보라는 것. 또 "미래를 기억"하라는 말도 덧붙인다.
미래를 기억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예컨대 '나'와 지민이 엄마의 자살이 아닌 "앞으로 두 사람이 결혼하기 때문에" 함께 외삼촌을 찾아왔다고 치는 것이다. 한쪽은 과거의 상실에 얽매인 생각이고, 다른 한쪽은 10여 년 후의 '평범한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둘 다 가능성에 대한 생각일 뿐이지만 차이는 분명했다. 긴 시간이 흐른 뒤 서로 부부가 된 두 사람이 맥주를 마시며 당시의 추억을 함께 곱씹고 있으니 말이다.
단편 '난주의 바다 앞에서'는 막다른 길에 놓인 사람이 어떻게 삶을 다시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소설가 '정현'은 강연을 목적으로 남해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대학 동창인 '은주'를 30년 만에 만난다. 은주는 많은 굴곡을 겪은 뒤였다. 몇 년 전 아이를 잃은 그녀는 이름도 개명하고, 연고도 없는 곳에 정착해 살고 있었다. 절망의 순간, 은주를 지탱해준 건 과거 복싱 시합에 나가 처참히 패배한 정현이 들려준 이야기였다.
"버티고 버티다가 넘어지긴 다 마찬가지야. 근데 넘어진다고 끝이 아니야. 그다음이 있어. (중략)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바로 그때 바람이 불어와. 나한테로."
결국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하나일지도 모른다. "고통과 불만족을 겪어내면 이윽고 단순한 기쁨이 찾아온다"는 말. 276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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