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자료실에 근무하던 시절 책장을 정리하다 눈에 띈 그림책 하나. 시원한 에메랄드빛 바다와 모래해변이 그려진 '할머니의 여름휴가'라는 책이었다. 제목에 걸맞게 모래사장 위 꽃무늬 수영복을 입은 할머니와 신나게 바다로 뛰어가는 강아지의 모습이 그려진 책 표지 그림을 보니 '아,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둥그스름한 귀여운 그림체에 마치 책에 직접 칠한 것 같은 색연필의 질감이 돋보여 따스한 느낌을 주는 그 책은 할머니의 조금 특별한 여름휴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어느 여름날, 고장난 선풍기가 윙윙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는 할머니의 적막한 집에 딸과 손자가 찾아온다. 며칠 전 바다에 다녀왔다며 신이 난 손자는 몸이 불편하셔서 직접 여행 가시기 힘든 할머니께 바닷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소라를 선물한다.
시끌벅적해진 것도 잠시, 딸과 손자가 돌아간 뒤 다시 적막해진 할머니의 집에서 강아지 메리가 소라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는다. 메리는 소라 안으로 쏙 들어갔다 나오는데, 소라 안으로 다녀온 메리의 몸에서 바다 냄새가 난다. 이를 보고 할머니는 꽃무늬 수영복, 커다란 양산, 돗자리, 수박 반쪽을 챙겨 메리와 함께 소라 안으로 휴가를 떠난다. 소라 속 바다에서 햇볕도 쬐고, 수영도 하고, 바다 친구들과 수박도 나눠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할머니는 바다 기념품점에서 바닷바람 스위치를 사서 돌아온다. 할머니집의 고장 난 선풍기에 바닷바람 스위치를 다니 바닷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소라 속 바닷가에서 햇볕에 까맣게 그을리도록 행복한 시간을 보낸 할머니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 그림책에 푹 빠져 할머니가 소라 속으로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이 그림책 속으로 몇 번이나 더 여행을 다녀왔다. 장롱 앞 가지런히 개어진 알록달록 목화솜 이불, 벽에 걸린 자식 셋 손자 넷의 사진, 정겨운 할머니 집의 풍경. 손자가 오자 냉장고에서 시원한 요구르트를 꺼내 손에 쥐어주시고, 집에 돌아가는 딸의 손에 베란다 텃밭에서 딴 채소를 들려주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나는 우리 외할머니의 모습도, 엄마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문득 그림책을 보는 것이 여행과 참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여행을 가서 힐링하는 시간을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그때의 소중한 추억으로 다시 힘을 낼 수 있듯이, 그림책을 보면서도 힐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일상에 지칠 때, 정겨운 할머니집도 경치 좋은 바닷가도 다녀올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그림책 속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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