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일 아침] "국회의원이 멸종동물 된다는 데요"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

호시절에 교수를 하고 무사히 정년퇴직을 해 운이 좋았다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 퇴직자를 달래는 소리라고 여겨 그냥 웃고 치우지만, 속으로는 호시절도 아니었고 무사하지도 않았다고 생각한다. 중간에 잘릴 뻔한 적도 많았고 그만둘 생각도 수없이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수만 그럴까. 어떤 직업인들 마찬가지 아닐까. 그래도 일찍 끝내어 다행이라고 할 만한 점은 앞으로는 교수라는 직업이 없어질 지도 모른다는 예상 때문이다. 출산율이 1%도 안 되니 학교 규모가 줄거나 없어지고 교사나 교수의 수도 감소하거나 아예 없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수 중에서도 인기가 있는 경제학이나 경영학이나 회계학, 건축학, 기계공학, 의학, 약학, 법학 쪽 교수가 없어진다고 하고, 한국 최고의 출세라고 하는 판검사니 변호사니 경찰이라는 직업도 없어진다고 한다. 모두가 선망하는 의사나 약사, 회계사나 은행원, 배우나 셰프나 모델도 없어진단다. 그런 직업들이 없어진다는 점에는 별 유감이 없지만, 지금 나의 직업인 농부가 없어진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유감이다. 최근의 경향으로는 벌써 없어졌어야 했을 것 같은 농부이지만, 그럼, 정말, 앞으로 소는 누가 키우나? 쌀은 누가 만드나?

앞으로 없어질 직업군을 아무리 살펴봐도 정치인이나 국회의원 등이 없는 점도 유감이라면 유감이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왜 존재하는가?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없으면 나라가 망하는가? 저들이 꼭 있어야 나라가 좋아지는가? 우리는 대통령이 탄핵 당하거나 유고로 자리가 빈 것도 보았고, 장관 없이 지내는 부서도 보았다. 지금 대통령 임기가 단임 5년인 것이 문제라고 하며 중임제 개헌을 해야 한다고들 야단이지만, 5년도 길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옛날 그리스처럼 하루살이 대통령을 두면 5년간 1825명이 대통령을 하게 되는데, 그 정도면 5년간 대통령 하고 싶은 이들은 다 회포를 풀고 더 이상 싸우지 않을 것이 아닐까? 그리스에서는 다른 공직도 비슷하게 해서 국민의 반 이상이 판사나 장차관이나 국회의원 같은 걸 했고, 뽑는 방법도 시험이나 선거가 아니라 추첨으로 했단다. 그야말로 운이 좋으면 둘 중에 한 사람은 고급 공직자로 출세한다는 것이니 좋지 않은가?

우리나라 언론이나 학계에서 자주 인용되는 잡지 중에 '포린 폴리시'라는 미국의 격월간 국제전문지가 있다. 그 잡지에서는 17년 전인 2005년 9-10월 호에서 2040년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정당이 없어질 거라고 했고, 일부 미래학자는 2020년대에는 국회의원이 멸종동물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물론 그 미래학자들은 미국인들이지 한국인들이 아니므로 우리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지 모르지만, 미국을 우리의 롤모델로 삼는 사람들이 많고, 특히 정치인이나 국회의원들이 그러하니 걱정할 사람들이 많겠다. 그러나 나처럼 땅이나 파는 무지랭이에게는 정당이나 국회의원이 없어도 무방하다. 그들이 농사에 필요할 때 비를 내리게 하거나 햇빛을 주기는 커녕 요즘 그런 날씨를 망치는 기후변화의 주범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무식한 놈이라고 욕할 나리들이 많을지 모르고, 정당이나 국회의원이 없어진다고 보는 이유가 무엇인지 대라고 윽박지를지 모르지만, 궁금하시면 '포린 폴리시'를 읽어보시라. 영어를 잘 하실 테니 말이다. 그 잡지를 읽기는 커녕 영어를 모르는 자라도 직관으로 그 이유를 알 거라고 생각한지만, 혹시나 그런 소리 한다고 빨갱이니 노랭이니 파랭이니 할지 모르니 주의할 필요가 있겠다.

민주주의 원리를 가장 잘 설명했다고 하는 장 자크 루소가 '사회계약론' 제3부 제12장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니 양도될 수 없고, 따라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가 아니고 대표가 될 수도 없다고 한 것을 읽어보시라. 그는 우리가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선거할 때 뿐이고, 선거가 끝나면 국민은 다시 노예가 된다고 했다. 요즘 다시 유행하는 것 같은 '자유'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게 황당무계한 게 아니라면 무엇을 해야할 지 고민이다. 2020년대가 끝날 때까지는 좋은 세상을 볼지 모르니 억지로라도 살아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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