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윤선갤러리, 김진 개인전 ‘아르스 모리엔디(Ars Moriendi)’

11월 13일까지…‘핑크는 없다’ 시리즈 전시

김진, 정물, 핑크는 없다#2022B17p-15, 2022, Oil on canvas, 130x162cm.
김진, 정물, 핑크는 없다#2022B17p-15, 2022, Oil on canvas, 130x162cm.

커다란 캔버스 속 아름다운 파스텔톤의 분홍빛 덩어리들이 매혹적으로 반짝인다. 마치 보석 같기도, 매끈한 풍선 같기도 한 정체불명의 그것들. 자세히 살펴보면 과일과 고기, 케이크 등 우리가 일상에서 소비하는 상품들을 그린 일종의 정물화임을 알 수 있다. 과도한 빛에 의해 고유색이 휘발된 것도 모자라 그림자마저 모두 사라진 모습이다.

이 작품의 이름은 역설적이게도 '핑크는 없다'다. 김진 작가가 2011년부터 10년 넘게 천착해오고 있는 시리즈의 주제다.

작가에게 핑크는 가짜 웃음과 같은 허위의 색이다. 작가는 어느날 백화점 매대에 놓인 상품들을 본다. 내리쬐는 조명과 광택제로 발광하는 듯한 과일과 고기는 더이상 자연물의 형태가 아니라 소비자들을 매혹하는, 관능만이 남은 핑크빛 덩어리들일 뿐이다.

그래서 작가는 정물들을 비추는 빛에 주목한다. 우리를 유혹으로 이끄는 빛은 일정 광량을 초과하면 오히려 제대로 된 형태를 볼 수 없게 만드는 폭력성을 띤다는 것. 그가 빛의 물리력을 강조하고자, 붓을 과감하게 밀어내 광원을 표현하는 것도 그 이유다. 점을 찍듯 하이라이트를 주는 방식과 달리 다소 거칠게 느껴진다.

김진 작가. 윤선갤러리 제공
김진 작가. 윤선갤러리 제공

김 작가는 "2008년 광우병 시위에서 경찰이 쏜 시위진압용 라이트를 보고난 뒤, 꼭 물리적인 것만이 폭력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거기에서부터 빛의 폭력성에 대한 얘기가 시작된 것 같다"며 "상품에 있어 매혹과 폭력이라는 빛의 양가성을 얘기하고 싶었다. 이윤과 효용성을 높이는 데 사용되는 '빛'은 과연 자유롭고 관대하기만 한가, 에 대한 질문을 던지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작가의 '핑크는 없다' 시리즈는 윤선갤러리에서 전시 중이다. 그의 초기작과 신작을 함께 볼 수 있다.

전시명 '아르스 모리엔디'(Ars Moriendi)는 '죽음을 위한 예술'이라는 뜻이다. 이진명 미술비평가는 "유기물, 산소, 박테리아, 수분, 온도로부터 나무, 태양, 동물에 이르러 다시 각종 노동, 기획과 관계 네트워크에 의해 과일과 고기가 우리 앞에 놓인다. 사람들은 이 모든 과정을 망각하고 오로지 화려한 빛이 비추는 상품을 소비할 뿐이다. 안락한 생활, 감각적 만족만이 삶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삶의 예술은 역설적이게도 죽음으로 향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작가는 그러한 과정을 거시적 관점으로 보지 못하는 우리의 편협한 삶의 예술을 아름다운 화면으로 비판한다. 빛의 알갱이들이 우리에게 진정한 삶과 진실한 죽음의 의미를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진 작가는 서울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세르지 국립고등예술학교 학사, 석사를 졸업했으며 2019년 제5회 전혁림미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전시는 11월 13일까지. 053-766-8278.

윤선갤러리 전시장 전경. 윤선갤러리 제공
윤선갤러리 전시장 전경. 윤선갤러리 제공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