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테이크 원’

K뮤지션들의 인생무대…무대만큼 흥미진진한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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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테이크 원'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음악 예능 하면 나올 건 이미 다 나왔다고 여겨질 만큼 포화상태인 게 현실이다. 하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테이크 원'은 어딘가 다르다. 심지어 익숙하게 봐왔던 뮤지션들이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이 음악 예능이 달리 보이는 건 무엇 때문일까.

◆죽기 전 단 하나의 무대 선다면

'각 분야를 대표하는 뮤지션들에게 물었다. 당신이 죽기 전, 단 한 번의 완벽한 무대를 남길 수 있다면? 조건은 단 하나 One take(원 테이크).'

프로그램의 설명은 단 한 줄이면 충분해야 한다고 했던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테이크 원'은 프로그램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자막 몇 줄로 이 프로그램의 모든 걸 설명해준다. 이제 K팝과 K클래식을 포함해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K뮤지션들이 등장할 것이고, 그들에게 죽기 전 단 하나의 무대를 제안할 터였다. 뮤지션들은 저마다 고민해 단 한곡을 선택하고(take one), 그 곡에 맞는 무대를 스스로 기획하고 또 그 무대에 초대할 특정 관객을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단 한 번의 무대(one take)를 완성해 보여줘야 한다.

룰은 심플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뮤지션에 따라 무대는 천차만별이다. 첫 뮤지션으로 나선 조수미는 난이도 높기로 유명한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 중 '올림피아의 아리아'에 등장하는 '인형의 노래'를 선곡해 여기에 한국적 색채를 넣기 위해 '꼭두각시' 음악을 매시업했다. 국악은 박자를 셀 때 호흡으로 세고, 서양음악은 심장 박동 수로 세기 때문에 그 비트를 맞추는 것부터가 크디 큰 모험인 이 무대를 조수미는 푸르메재단 어린이 가족과 성악 전공자들을 초대해 선보인다. 천하의 조수미조차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긴장하는 무대의 쫄깃함과 그런 몰입감 속에서 펼쳐지는 천상의 무대는 '테이크 원'이 그 심플한 룰만으로 어떻게 차별화된 무대를 선사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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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테이크 원'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두 번째 뮤지션으로 출연한 악동뮤지션은 진짜 악동처럼 엄청난 의욕과 에너지로 쏟아내는 아이디어 때문에 도저히 원 테이크로 찍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무대에 도전한다. '낙하'를 선곡하고 진짜 스카이다이버가 낙하하면서 시작하는 무대는 수백 명의 댄서들이 동원된 어마어마한 스펙터클을 연출해낸다. 청와대를 배경으로 '레이니즘'을 선보이는 비나, 재개발 지역에서 코로나19로 힘겨운 나날들을 보낸 의료진‧소방관‧소상인들을 모셔놓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부른 임재범, 한강 한 가운데에 바지선을 띄워 유람선으로 모셔온 관객들 앞에서 기상천외한 버스킹으로 본인도 가장 부르기 어렵다는 'Song for me'를 선사하는 박정현 등등 룰은 하나지만 출연 뮤지션들은 무대 하나에 자신들의 음악철학과 가치관을 담는다.

각 무대에 대해 제작진이 붙여 놓은 부제는 바로 그 가치관을 압축한다. 그래서 조수미에게는 'Korea; the pioneer(한국; 개척자)'가 또 악동뮤지션에게는 'Originality; like no other(독창성; 유일무이한)'이 이들의 무대를 통해 그려지는 음악적 가치관을 담는 부제로 덧붙여졌다. 마치 뮤지션의 버킷리스트 같은 무대라고나 할까. '테이크 원'이 색다른 음악 예능의 결을 보여줄 수 있게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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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테이크 원'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코로나 후 다시 보는 공연의 향연

사실 뮤지션들이 다시 무대에 올라 관객을 마주하는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새삼스런 감흥이 느껴지는 시국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말 그대로 멈춰서 있는 공연장이 최근 들어 하나 둘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이러한 분위기는 음악 예능에서도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테이크 원'이 뮤지션들에게 버킷리스트처럼 제안하는 무대는 그간 꾹꾹 눌러뒀던 공연에 대한 욕망을 폭발시키는 에너지로 작용한다. "넷플릭스잖아"라며 단 한 번의 무대에 어마어마한 물량을 아이디어성으로 마구 던지던 뮤지션은 실제로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구현된 초호화 무대 앞에서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한다. 악동뮤지션의 찬혁은 처음 촬영지로 정해져 찾아간 황량한 벌판에 적이 실망했지만, 그 공간에 자신의 상상대로 꾸며진 무대를 보고는 감탄했고, 비는 '단 한 번의 무대'라면 그 누구도 해보지 않는 곳에서 해야 한다며 '청와대'를 거론했는데, 실제로 그걸 실현해낸 제작진에 놀라워했다. 한 마디로 '플렉스'하는 무대가 뮤지션들에게 제공하는 음악의 '만끽'과, 그 궁극적인 목표인 관객을 위한 무대가 연결되면서 '테이크 원'은 어떤 해방감을 선사한다.

물론 여기에는 뮤지션들이 가진 저마다의 서사도 더해진다. 6년 간 칩거하다 다시 '테이크 원'으로 무대에 서게 된 임재범은 아내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그간 그가 겪었을 심적 고통을 전해줬고, 이를 이겨내기 위해 만든 곡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이제는 자신만이 아닌 어려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타인들과 나누는 시간을 보여줬다. 젊은 나이에 가수가 되기 위해 한국에 와서 어려운 시기를 거쳐 최고의 디바가 된 박정현은 타향살이로 자주 볼 수 없던 미국에 계신 부모님을 모셔와 그 앞에서 'Song for me'를 노래했다. 마치 한 편의 자서전 같은 노래여서였을까. 애써 감정을 눌러가며 노래를 마친 박정현은 노래가 끝난 후 무대 뒤편에서 눈물을 찍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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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테이크 원'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무대만큼 흥미진진한 제작기

뮤지션들의 플렉스가 주는 음악 향연의 묘미가 먼저 시선을 잡아 끌지만, '테이크 원'에서 그 무대만큼 흥미진진한 건 이 어마어마한 상상을 현실로 구현해내는 제작진들의 제작기다. 뮤지션이 막연하게 생각해서 말하는 공간이나 무대 구성을, 제작진은 찰떡 같이 알아듣고 거기 딱 어울리는 공간을 찾아내고 상상 그 이상의 무대를 만들어낸다. 그건 이걸 막연하게 생각했던 뮤지션들이 "내가 괜한 일을 벌였나?"하고 되물을 정도다. 프로그램에 긴박감을 만들기 위해 제작진이 타이머가 돌아가는 시계를 뮤지션들에게 제공하고, 그래서 그걸 보며 줄어드는 시간 속에서 '테이크 원' 무대를 수락한 걸 후회하던 뮤지션들이 끝내 뿌듯한 마음으로 무대를 내려올 수 있는 건, 바로 그 '인생 무대'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 제작진들의 보이지 않는 손길과 발품 때문이다.

K팝은 물론이고 K콘텐츠를 이야기하면 대부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대 위 뮤지션들이나 작품 속 주인공들을 떠올리지만 '테이크 원'을 보다보면 이런 생각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들 뒤에 얼마나 많은 인원들이 투입되고 그들이 일사분란하게 춤을 맞추고, 무대를 꾸미고, 조명을 터트리고, 카메라를 움직이는가가 이 프로그램에는 생생하게 담겨 있다. 보이지 않아서 없는 것처럼 치부하며 모든 것이 무대 위 뮤지션의 성과로만 수렴되는 콘텐츠의 속성 속에서 '테이크 원'은 드디어 거기에는 스텝들이 있었다고 증언한다. 악동뮤지션이 무려 수백 명의 댄서들과 함께 꾸며 만든 원 테이크 영상은 마지막에 프로그램의 엔딩 크레딧이 오르면서 보여주는 제작영상과 나란히 보여지면서 그 이면에 숨겨져 있던 노동의 존재를 드러낸다. 단 하나의 무대를 위해서도 그토록 많은 땀방울이 필요했다는 걸 이만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음악 프로그램이 있을까.

그래서 '테이크 원'은 무엇보다 무대 하나가 갖는 소중한 가치를 드러내고 거기에 대한 예우를 담는 프로그램이 됐다. 뮤지션은 물론이고 PD, 작가, 카메라맨, 댄서, 조명, 의상 등 모든 이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만들어내는 힘. 그것이 K팝, 나아가 K콘텐츠의 힘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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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테이크 원'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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