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의료계 성차별과 여성가족부의 역할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아무런 기준 없이 여성 지원자를 탈락시킨 흉부외과는 각성하라"

의학 드라마 '뉴하트'의 주인공인 여성 의사 남혜석의 외침이다. 수능 만점을 받아 명문대 의과대학에 수석 입학했고, 인턴 근무 성적도 1위를 차지한 남혜석은 '환자를 살리는 의사'가 되고 싶어 흉부외과에 지원한다. 그러나 과장은 지원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합격시킨다. 억울해하던 남혜석은 용기를 내 '여성 차별'에 항의하는 '피켓 시위'에 나선다. '여자도 할 수 있습니다', '빼앗긴 여성 인권을 돌려주십시오' 피켓에 적혀 있던 호소다.

실제로 여성 의사들은 전공의 지원, 교수 임용, 승진 등에서 차별을 경험한다. 특정 인기 전공과의 경우 여성 전공의를 선발하지 않는 '남성 카르텔'이 아직도 남아 있다. 한국여자의사회가 2018년 발표한 '의료계 성평등 현황'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여성 의사 747명 중 52.6%가 전공의 선발 과정에서 성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체력이 부족하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으로 배제하고 결혼, 임신, 출산의 이유로 여성 전공의를 차별한다. 2016년 국가인권위의 실태조사를 보면 여성 전공의 128명 중 71.4%가 원하는 시기에 자유롭게 임신을 결정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면접에서 '임신할 계획이냐?'라는 어이없는 질문도 받고, '수련 기간 중 임신하면 안 된다.'라는 유·무언의 압박도 경험한다. 출산으로 인한 인력 공백은 병원이 해결할 문제임에도 '모성보호'를 받아야 할 여성 전공의에게 책임이 전가되고 있다.

여성 의사가 겪는 의료계의 '유리 천장' 또한 견고하다. 많은 병원이 고위직 보직자로 남성 의사를 선호한다. '수도권을 벗어난 지역은 여성 상급종합병원장을 찾아보기 어렵다. 양성평등의 인식 변화가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 갈 길이 아직 멀다.' 한국여자의사회 백현욱 회장의 말이다.

의료계가 특수 분야라고 성차별이 합리화될 수는 없다. '성평등 인식'의 절대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의료계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아울러 의료 현장의 성차별을 모니터링하고 지도, 감독하며 '의료계 성평등 문화' 형성을 위한 중장기적 로드맵을 제시하는 여가부의 역할도 필요하다.

그런데 여가부가 폐지될지 모른다는 소식에 안타까운 마음이다. 의료계의 성차별 해소가 요원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만은 아니다. 의료계보다 훨씬 더 심각한 성차별을 겪으면서도 목소리조차 내기 힘든 '이주 여성', '장애 여성', '청년 여성'들의 절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가부 폐지가 성평등을 강화한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의 이 말은 궤변에 가깝다. 성평등 업무가 보건복지부로 이관되면 여가부가 해 오던 고유의 역할이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성차별 해소를 위한 독립된 부처의 설치는 UN의 권고이며, 세계 137개국에 여가부와 같은 성평등 정책을 전담하는 부처가 있다.

세계 경제 포럼이 2020년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서 한국은 153개국 중 108위로 최하위권이다. 지금은 여가부를 폐지할 때가 아니라 '성평등 정책의 컨트롤타워'로 더욱 강화해야 할 때다. 이 땅에 완전한 성평등이 이뤄지는 그날, 그날이 오면 '기쁜 마음'으로 여가부를 폐지해도 늦지 않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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