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는 발언을 남겼다. 얼핏 단편적으로 생각한다면 맞는 말이라고 착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가해자 중심적인 인식으로, 역사의 피해자인 우리가 가져야 할 인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우리가 각종 폭력 피해자에게 하는 말이 있다. "맞을 짓을 했다" 내지는 "그럴 만하니깐 그랬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피해자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다.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는 폭력을 가한 사람의 입장을 정당화시키고, 폭력을 당한 사람의 입장을 짓밟는 더더욱 폭력적인 언사이기 때문이다. 국가 간의 폭력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 민족은 피해와 수모를 겪을 만했고, 일제는 당연히 조선을 정복할 만했다는 인식은 적어도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이 가져야 할 자세는 아니다.
그리고 우리 역사에서 이러한 언사를 누가 주도했는가를 살펴보면 이러한 주장은 금방 논박될 수 있다. 대표적인 친일파 을사오적 이완용은 1919년 매일신보 기고를 통해 "조선이 식민지가 된 것은 구(舊) 한국이 힘이 없었기 때문이며 역사적으로 당연한 운명과 세계적 대세에 순응시키기 위한 조선 민족의 유일한 활로이기에 단행된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친일 인사가 일본의 식민 지배 정당성을 설파하였으며, '조선은 일본에게 병탄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라는 주장을 수없이 이야기해 왔다.
바로 이것이 일제가 우리 민족을 지배하면서 남겼던 2등 민족 인식의 잔재이자, 식민사관이라 하겠다. 그리고 정 비대위원장의 발언 또한 이러한 식민사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우리가 무기력하게 일제에게 병탄되었다는 말 또한 사실과는 다르다. 대한제국 시기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해 일어난 의병은 1895년의 을미의병과 1905년 이후의 을사의병, 그리고 정미의병이 있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후 상당수의 군인이 의병에 합류하였으며 특히 1907년과 1910년 사이의 의병 투쟁은 매우 격렬해 일본 측의 공식 통계로 볼 때에도 15만여 명의 봉기, 2천851회의 충돌, 1만6천700명 사망, 3만6천770명 부상 등 총 5만3천여 명의 의병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는 일본 측 기록인 '일한합방비사'(日韓合邦秘史)상에 엄연히 기록돼 있다.
또한 일본은 2차대전 전범 국가로 제국주의적 한반도 점령과 통치에 대해서 사과한 적도 없고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왜곡·편향된 역사 교과서 문제, 일본 정치인들의 한국에 대한 망언 문제 등을 봤을 때 일본은 우리의 우방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부족하다. 일본은 언제든지 대한민국을 또다시 침략할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을 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정 비대위원장의 발언과 행동이 과연 헌법을 준수하고 국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이자, 역사인식인지 심히 우려스럽다. 정 비대위원장은 지금이라도 국민 앞에, 그리고 우리 독립 유공자와 영령들 앞에 진심으로 사과하고,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본인의 영달과 타국의 이익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민족의 번영과 우리나라의 이익을 위해 힘쓸 것을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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