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한가운데 있는 헤센주의 주도인 카셀에서는 5년에 한 번 도큐멘타라는 전시가 열린다. 올해가 그 5년의 주기다. 1955년 미술가이자 큐레이터였던 카셀대학의 교수 아르놀트 보데가 창설한 이 전시는 카셀 시민들에게 나치에 의한 퇴폐미술이 아닌 현대미술을 접하게 할 목적으로 창설됐고, 이후 세계미술의 면모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전시가 되었다.
오쿠이 엔위저, 로저 뷔르겔, 아담 심칙 등 굵직한 큐레이터들이 카셀 도큐멘타를 이끈 이들이다. 이번 도큐멘타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컬렉티브인 '루앙루파'(Ruangrupa)라는 아시아 그룹이 큐레이터로 선임되며 또 한 번의 신선함을 안겨줬다.
라틴어 큐라(Cura)에서 유래한 단어인 큐레이터는 '보살피다', '관리하다' 등의 뜻으로 미술전시를 기획하고 관리하는 직업이다. 큐레이터가 미술계 내에서 중요하게 부상한 건 1990년대 이후로 비엔날레 같은 대규모 전시가 열리며 전시의 주제나 방향을 잡는 힘이 기획자에게 모였고, 기획의 중요성이 커졌다. 사회에서 미술의 역할이 확장된 것이다.
지구적 차원의 문제에 대해서 작가들은 개인적으로든 그룹으로든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었으며 큐레이터는 크든 작든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작가들과 함께 선보였다. 그러므로 큐레이터의 철학은 작가선정의 과정에서부터 뚜렷이 드러난다. 물론 이에 따른 부작용도 있다. 큐레이터의 취향과 방향에 부합하지 않는 작가는 배제된다. 또한 큐레이터가 기관에 소속될 경우 자신의 철학을 가감없이 드러내기 힘들 수도 있다. 반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신이 선호하지 않는 스타일과 작품, 활동을 해야만 할 수도 있다.
이런저런 눈치를 보지 않으며 활동하는 이를 독립 큐레이터라 부른다. 독립적인 큐레이터는 간혹 시대의 불편한 진실을 밖으로 드러내는 역활을 마다하지 않는다. 잰더, 새로운 가족의 탄생, 불평등, 노동, 청년의 문제 같은 민감한 사회적 주제는 전시를 통해, 세미나를 통해, 활동을 통해 공론화되며 미술계의 담론으로 부상한다. 물론 독립적으로 활동한다고 온전히 자신의 의지대로 기획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독립 큐레이터는 버티기 힘들다. 특히 지역의 경우 독립 큐레이터가 제대로 설 수 있는 자리가 많이 없다. 그러다 보니 종종 독립 큐레이터는 외부 기획자로서 관의 중요한 전시에 기획을 맡기도 한다. 하지만 젊은 큐레이터의 경우 그런 행운을 잡기란 어렵다.
지역에서도 젊은 큐레이터의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를 통해서 청년 큐레이터로 성장하며 그들은 지역에서 스스로 기획전시를 만들기도 하지만, 현실은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비중있는 전시를 다루는 일과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서류 더미와 행정의 무한한 반복일 수도 있다. 기획 역시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 사람에게 지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며 창의적인 기획은 현실 앞에서 꿈같은 이상으로 여겨진다. 소신 있고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기획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시간은 지역 문화계에서 만들어야만 한다. 보여주기식의 무리한 규모의 전시를 지양하고 지역에서 꿈을 펼칠 독립적인 청년 큐레이터의 무대를 과감하고 꼼꼼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한동훈·가족 명의글' 1천68개 전수조사…"비방글은 12건 뿐"
사드 사태…굴중(屈中)·반미(反美) 끝판왕 文정권! [석민의News픽]
"죽지 않는다" 이재명…망나니 칼춤 예산·법안 [석민의News픽]
尹, 상승세 탄 국정지지율 50% 근접… 다시 결집하는 대구경북 민심
"이재명 외 대통령 후보 할 인물 없어…무죄 확신" 野 박수현 소신 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