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1일 경북 청도에서 지병으로 숨진 고(故) 이상태 씨는 결국 생의 마지막까지 평생의 아픔을 풀지 못했다. 향년 78세였다. 그는 대구 10월 항쟁과 맞닿은 보도연맹 사건으로 1950년 아버지 이문우 씨를 잃었다.
이 씨는 진상규명을 바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2기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대상에 이름을 올렸지만,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생을 마감했다. 매일신문 취재진과 만나 억울하게 희생된 아버지에 대해 증언하기로 약속한 지 불과 며칠 뒤였다.
부음을 전한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은 "이상태 씨는 아버지의 희생으로 9살 때부터 머슴살이를 하며 서글프게 살았다. 끝내 진실을 못 밝히고 눈을 감았다"며 "해마다 고령의 유족들이 세상을 떠난다. 지금도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숨을 쉬었다.
대구 10월 항쟁의 재평가와 복권이 시급한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유가족들의 나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76년이 흐른 만큼 사건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부모를 잃은 아픔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2세들도 점차 세상을 등지고 있다.
그나마 3세 유족들이 조금씩 진상규명에 동참하는 분위기지만 아직 미진하다. 평생을 괴로워한 '빨갱이' 딱지와 연좌제가 두려워 자녀들에게조차 피해 사실을 털어놓지 못한 유족들이 많아서다. 갈수록 진상규명이 어려워지고, 명예회복과 보상 대상도 점차 남지 않게 된다.
유족들은 2기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 희망을 걸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가 없다. 일단 조사 자체가 어렵다. 조사관들의 수가 부족하고, 사실을 증언해줄 유족이나 목격자들도 차례차례 세상을 떠나고 있다. 70여 년간 이어온 연좌제의 공포에 아직도 선뜻 입을 열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진실화해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진상규명 신청이 접수된 대구경북의 '한국전쟁 발발 전후 민간인 희생 사건'은 모두 1천281건이다. 전체 신청(1만1천357건)의 11.3%를 차지했다. 지역별로 대구 57건을 비롯해 경주(238건)와 영덕(132건), 문경(131건), 울진(120건), 청도(112건) 등이 많다.
연구자들은 대구 10월 항쟁을 한국사의 주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평가한다. 특별법 제정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국가 차원의 보상, 회복 지원을 위한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인 대구시와 경북도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제주 4·3과 여수·순천 사건 등도 대부분 지자체의 적극적인 노력 끝에 국가적 재평가의 대상이 됐다.
김상숙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10월 항쟁은 해방 후 지역에서 있었던 역사적으로 가장 큰 사건이다. 제주 4·3과 여수·순천 사건과 비교해 역사적 복원과 희생자 추념이 무척 더디다"며 "항쟁의 중심지에 역사관을 마련하고, 표지석이라도 세워야 한다. 이제 지자체와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대구시의 노력은 아직 미진하다. 지난 3월 진실화해위에서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과 관련된 증언채록 사업을 시작했지만, 대구시는 응하지 않았다. 대구시 관계자는 "진실규명 자체는 진실화해위에서 하는 일"이라며 "너무 갑작스럽게 제안이 와서 난감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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