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트렌드경제] "우리 집이 미쉐린 맛집?"…밀키트의 진화

지난 6월 30일 경주 농가 맛집
지난 6월 30일 경주 농가 맛집 '고두반'의 음식이 전국 롯데마트에서 간편조리세트(밀키트)로 출시됐다. 제품은 고두반의 '옛두부맑은전골'로 고소한 손두부와 미나리 등 채소가 어우러진 맑은 국물이 특징이다. 밀키트에는 농가맛집 이야기, 대표자 인사말, 조리 방법 등이 소개된 카드가 들어있다. 경북도 제공

지난 6월 30일 경주 농가 맛집 '고두반'의 메뉴 '옛두부맑은전골'이 간편조리세트(밀키트)로 전국 동시 출시됐다. 다음 달에는 상주 농가 맛집 '종달이와 보릿단'의 '어복쟁반'이 밀키트로 전국 소비자를 만날 예정이다.

이 둘은 공통점이 있다. 경상북도농업기술원이 추진한 '농가 맛집 특화밥상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한 메뉴이자 농촌진흥청의 '향토음식 간편조리세트 공모전 경연대회'를 휩쓴 음식이다. 공모전은 농촌형 외식·체험사업장 활성화를 위해 기획됐는데, 농촌진흥청이 최종 선정한 음식은 밀키트 전문 기업인 프레시지에서 상품화 과정을 거쳐 롯데마트 자체 상표 (PB·Private Brand)를 달고 전국에 출시하는 특전을 주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과 간편함이 소비 트렌드로 확산하면서 밀키트 시장이 양적·질적 성장을 거듭하면서 제품도 진일보했다. 유명 맛집 음식을 찾아가 줄 서서 기다리지 않아도 집에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밀키트로 재현한 것이다. 과거 간단히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했던 냉동, 인스턴트식품과 달리 밀키트는 실제 외식할 때와 거의 흡사한 맛을 구현할 수 있어서다.

앞으로 대구시 공공배달 앱
앞으로 대구시 공공배달 앱 '대구로'를 통해 지역 전통시장 장보기도 가능할 전망이다. 23일 대구 달서구 와룡시장에서 상인들이 '대구로' 앱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배달될 캠핑용 밀키트 '캠핑와용' 제품을 포장하고 있다. 대구시는 와룡시장에서 개발한 캠핑용 밀키트 상품을 시작으로 소비자들이 직접 시장을 방문하지 않고도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희망하는 모든 전통시장을 대상으로 '대구로' 앱 입점을 추진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역 맛집·미쉐린 맛집이 우리 집에

이마트 피코크는 '고수의 맛집'이라는 브랜드를 내걸고 전국 각 지역의 맛집 메뉴를 상품화하고 있다. 강원 춘천 소양강댐 인근에서 1978년부터 이어지는 닭갈비 맛집인 통나무집 닭갈비를 입점시키기 위해 바이어가 춘천을 5번 이상 오가며 설득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을 시장이 보답해줬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고수의 맛집 시리즈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4.6% 신장했다. 소비자 반응이 높게 나타나면서 이마트와 협업하는 맛집 수도 2020년 25곳, 지난해 35곳, 올해 51곳으로 갈수록 늘고 있다. 협업 제품 종류도 같은 기간 65종에서 91종으로 늘었다.

이마트 관계자는 "피코크 오뎅식당 부대찌개 제품을 예로 들면 의정부 부대찌개 골목 맛집인 오뎅식당에서 3대에 걸쳐 지켜온 레시피를 재현했다. 대구 지역 이마트에서만 1월부터 9월까지 9천개가량 판매됐을 정도로 인기"라고 설명했다.

오비맥주 한맥도 홈플러스와 함께 맛집 밀키트 3종을 출시했다. 서울 고깃집 '맛돈'의 청국장찌개, 제주 '애월식당'의 제주 흑돼지 제육 된장찌개 정식, '신사양곱창'의 소곱창 전골 등 맥주와 함께 즐기기 좋은 메뉴로 구성했다. 한맥은 식당 점주들과 상생을 위해 수익금 일부를 해당 점포에 환원한다.

마켓컬리도 유명 맛집의 다양한 밀키트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이연복의 목란 짬뽕'이 올해 판매된 짬뽕 전체 판매량 중 72%를 차지한다. 이연복 셰프의 식당 '목란'이 예약하기 어렵기로 유명한 만큼 그 대체재로 밀키트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밖에도 부산의 '사미헌' 갈비탕을 밀키트로 만든 '사미헌 한끼 갈비탕'과 '삼성동 페리지', '장진우식당' 등 개성 있는 파스타로 유명한 레스토랑의 대표 메뉴를 밀키트로 준비했다. 분식 프랜차이즈 스쿨푸드는 자사 메뉴를 밀키트로 재현한 '푸짐한 튀김 국물 떡볶이'도 집에서 쉽게 만들기 어려운 야채 튀김, 오징어 튀김, 잡채 튀김 등 여러 종류의 튀김이 포함돼 마켓컬리에서 인기다. 올해 8월까지 누적 판매량이 8만4천개를 돌파했을 정도다.

심지어 미쉐린 맛집 메뉴를 집에서 즐길 수 있게 하려는 시도도 있다. 신세계푸드는 6월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 선정된 '봉밀가'와 '올반·봉밀가 평양식 메밀국수' 2종을 선보였다. 미쉐린 가이드는 매년 봄 발간되는 식당 및 여행 가이드 시리즈로, 찾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식당을 선정한다.

대구시와 대구전통시장진흥재단도 코로나19로 침체한 골목상권의 활성화 사업에 나서면서 이곡으뜸 먹거리타운·물베기 골목 등 두 곳의 골목을 최종 선정했는데, 식당들의 밀키트 개발·판매도 지원책에 포함됐다.

홈플러스가 프리미엄 PB
홈플러스가 프리미엄 PB '홈플러스 시그니처'의 온라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증가했다고 27일 밝혔다. 사진은 27일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에서 '홈플러스 시그니처' 밀키트 상품을 쇼핑하고 있는 고객. 연합뉴스

◆맛은 기본, 스토리 입히고 굿즈 출시도

국내 밀키트 시장을 꽉 움켜쥐고 있는 기업 프레시지는 이른바 '박막례 밀키트'로 온라인 완판 신화를 세웠다. 지난해 7월 유튜브 구독자 130만명을 자랑하는 박막례 할머니와 협업해 선보인 '박막례 비빔국수' 2종은 배달의민족 쇼핑라이브 방송 1분 만에 2만1천개가 완판됐다. 지난해 11월 출시한 '박막례 국물떡볶이' 2종은 25만명이 동시 시청하는 가운데 3만6천개가 모두 팔렸다.

업계에서는 맛과 편의성에 스토리가 더해진 힘이라고 분석한다. 수십 년 식당 운영 경력의 박막례 할머니가 모든 공정에 참여해 소비자에게 '할머니 손맛이 담긴 음식'이라는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또한 누구나 쉽고 맛있게 만들 수 있는 메뉴라는 점이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밀키트를 찾는 소비자의 눈높이가 높아졌다. 맛은 물론이고 포장 디자인, 문구, 맛집 매장 분위기와 히스토리까지 담아낸 제품에 더 호응한다"면서 "재택근무 확대 등으로 '돌밥돌밥'(돌아서면 밥하고 돌아서면 밥하고의 준말) 스트레스에 간편식 수요가 늘었다지만 밀키트도 음식이고, 음식은 문화다. 맛에 스토리가 더해지면 킬러 콘텐츠가 된다"고 전했다.

이 같은 흐름에 밀키트 출시를 넘어 맛집 관련 이색 상품을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최근 박막례 할머니와 손잡고 '막례스토랑'을 열었다. 떡볶이, 떡갈비, 호박식혜 같은 음식뿐 아니라 박막례 할머니 티셔츠 등 굿즈도 판다.

올초 GS25는 1~2시간 대기는 예사인 서울 강남의 인기 퓨전 한식당인 호족반과 협업해 도시락, 밀키트 등 간편식을 출시했다. 당시 GS25는 호족반 디자인이 새겨진 머그컵과 티셔츠, 잠옷 등 굿즈 1천560점으로 대대적인 프로모션에 나섰다.

대백프라자 지하 1층 식품관에서는 각양 각색의 밀키트 제품들을 한 곳에 모아 판매하고 있다. 한국야쿠르트, 풀무원, 대림, 하림 등 대형 브랜드 외에도 대구 브랜드
대백프라자 지하 1층 식품관에서는 각양 각색의 밀키트 제품들을 한 곳에 모아 판매하고 있다. 한국야쿠르트, 풀무원, 대림, 하림 등 대형 브랜드 외에도 대구 브랜드 '달성 밀키트'를 비롯한 밀키트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대구백화점 제공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