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 시인의 전라도 서남방언으로 쓰여진 시집 '그라시재라'를 읽는 밤이다. 딸과 함께 소리 내어 읽는데, 웃다가 숙연해지다가 시큰거리면서도 자꾸 당겨 읽게 된다. 열 살 무렵 "동화책을 읽거나 숙제를 하거나 이불 속에 누워서" 곁에서 들었던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지문 하나 없는 대화체로 이끌어낸 시편들이다.
"화순떡", "공산떡", "월산떡", "정순네", "영봉이네", "윤재네", "성님", "아우님"이라 불리는 월출산 산자락 작은 동네에 밤마다 실타래를 손에 들고 모이는 이녁들의 사연에 가슴이 저린다. 담소와 우스개가 담아내는 미묘한 감정의 변이들, 말로는 못한 발화자들의 깊은 슬픔, 해학의 정조에 깊이 감응한다, 무엇보다 근대사의 굴곡진 그늘-동학란, 천주교 수난사, 한국전쟁과 양민학살-을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의 애환을 특유의 여성성으로 녹여냈다는 점이 감동적이다. 깊은 밤 그네들의 말들은 월출산을 흘러내리는 달빛이 되고 이슬이 되고 어둠이 되고, 혼이 서린 어떤 말은 지나가는 귀신도 발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그라시재라"는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라는 뜻이다. 1960년대 어느 고을에서나 할머니들은 둘이 혹은 서넛이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지나온 삶을 받아들이며 세월을 다독였다. 일이 있을 때마다 모여 역사의 굴곡을 넘어온 내 이웃의 사연과 사정에 귀 기울이고 오늘을 추렴했다. 그래서 옆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온 반응이 "그러믄요", "그럴밖에요"다. "제 탯말의 문화 배경에서 비애란 승화되는 것이 아니고 일상을 다지는 것이었어요"라는 시인의 말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방언의 맛은 무엇일까. 말로 들으면 이해가 되는데 그대로 표준어로 옮기면 호흡이 사라지는 것. 민중의 순박성과 생명력, 지혜와 통찰이 담긴 것. 하나의 '기표'에 여러 가지 의미들이 덧붙여지고 확장되는 비정형의 다의성.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뭐라카노, 저 편 강기슭에서/니 뭐라카노, 바람에 불려서"(박목월,'이별가')에 드러나는 툭툭 불거지는 슬픔, "오매, 단풍 들겄네"(김영랑, '오매 단풍 들겄네')에 드러나는 계절의 빠른 변화에 대한 놀람을 어떤 표준말이 감당하겠는가? '칠성시장에는 발씨로/봄이 난만하다'(상희구, '대구의 봄은')에서 '발씨로'를 '벌써'로 대체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방언에도 시인의 정신세계가 느껴진다. 사람들 속에 담긴 문학을 문학 되게 하는 세밀한 작업은 시인이나 작가가 부여받은 기능이고 의무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전세계적으로 6천여 개의 방언이 사용되고 있다지만 시시각각 방언이 사멸되고 있다. 언어의 영향과 문화의 영향이 비례했던 현상을 볼 때 방언의 소멸은 그대로 고유문화와 정신의 죽음이다. 표준말의 억압에 무릎 꿇지 않고, 표준말의 금형에 갇히지 않는 시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이유다.
다시 '그라시재라'를 펼친다. 할머니들 사운거리는 말맛을 잠결에 듣다가 깨어나기도 했던 시인의 어린 시절은 따사로웠을 것이다. 제도권 교육 밖에 있는 사람들의 조용하고 깊은 통찰과 지혜가 먹물들의 관념과 허위보다 비교할 수 없이 중하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 깨닫고, 그 말들이 화석화되기 전에 뜰채로 건져 우리 시사의 더할 나위 없는 자산으로 파닥이게 한 시인의 마음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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