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보니 확실해진 게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그리던 그림 말이다. 전재수 민주당 의원 말처럼 대선 패배 후 지지자들이 '널브러져 있을 때' 주식 거래를 한 정도를 넘어 이 대표는 일사천리로 국회의원이 되고, 당 대표에 당선되었다. 그 이유가 명확해진 것이다. 당시 같은 당내에서조차 무리수라는 비판을 제기했음에도 이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본래 자신이 세운 계획대로 진행했다는 게 정확한 말이 아닐까 싶다.
친명계 의원들이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를 강권해서 인천 계양을 지역구 공백을 만든 것부터 설계도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당시에도 국회의원직과 대표직은 '방탄용'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의원들이 집단으로 육탄 방어하는 모습. 그게 바로 이 대표가 처음부터 그린 그림 아니겠는가. 이 대표가 대표 신분이 아니었다면 의원들의 집단행동이 가능했을까.
"김용, 정진상 정도는 되어야 측근"이라던 두 사람을 '출근도 별로 안 하는' 당직자로 임명한 이유도 마찬가지. '야당 당사 압수수색' 혹은 '야당 탄압'이라는 명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넓게 보면 무리를 거듭하며 이른바 '검수완박' 법을 통과시킨 이유도 명확해졌다. 검찰 수사를 막아야 할 필요가 절실했음이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이 대표와 민주당은 검찰 수사가 "조작이며 정치 탄압"이라는 데 일차 방어선을 치는 모양새다. 문제는 증거가 너무 확실하다는 점이다. 돈 요구 경로, 남욱 변호사의 돈 마련 경위, 돈 전달 인물·장소·시간·방법이 특정된 상황이다. 겉으로는 '조작'이란 말에 동참해도 진심으로 믿는 국회의원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이차 방어선으로 '김용'의 개인적 일탈을 주장하려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돈을 본 적도 쓴 적도 없다"는 이 대표의 발언이나 "김 부원장의 잘못이 곧 이 대표의 잘못은 아니다"는 민주당 진성준 의원의 말은 그들이 깔아 놓은 복선이다. 이 대표의 '특검' 주장은 세 번째 방어선이라 보아야 한다. 일방적으로 법을 통과시켜 특검 수사를 할 수 있다고 믿는 게 아니라 최소한 관심을 분산시킬 수 있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 이 대표의 범죄 혐의를 단정할 수는 없다. 설사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이 이 대표를 지목, '큰 돌을 던지는' 폭탄 발언을 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검찰 수사 완결까지도 갈 길이 멀거니와 설사 기소된다 해도 지루한 법정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아무리 범죄 혐의가 확실해 보여도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려야 한다. 문제는 검찰과 이 대표가, 검찰과 민주당이, 여와 야가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동안 엉망이 될 우리 정치판이다. 비단 정치판만일까. 국회는 아무 결정도 못 하는 식물 국회가 될 게 분명하고 국정은 혼란상을 벗어나지 못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주사파 척결' '문재인 이재명 구속'을 외치는 집단과,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을 내건 세력이 맞붙는 사실상의 내전이 계속될 것이다.
해법이 무엇일까. 일부에서는 '민주당의 결단'을 촉구하는 소리가 들린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설훈 의원과 김해영 전 의원처럼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인사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아무리 낮아도 민주당이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지지율이 떨어지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명확한 증거가 나올 때마다, 선거가 가까울수록 민주당 구성원들의 위기감이 커질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 분명하지만 이 대표와의 관계 설정에 대한 민주당의 각성이 필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엄격히 말해 대장동과 백현동, 성남FC 후원금,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은 모두 이 대표의 개인 비리 혐의이다. 민주당과 관련된 일도 아니거니와 민주당을 위해 자금이 쓰인 사실도 없다. 민주당이 이 대표 방어를 위해 스크럼을 짜고 함께 진흙탕으로 쓸려 들어갈 필요도, 이유도 없는 셈이다. 유동규 씨는 감옥에 있는 동안 명상을 하며 각성했다고 한다. 내가 지은 죄는 내가 벌을 받고, 남이 지은 죄는 남이 책임져야 한다고. 너무도 당연하고 단순한 사실 아닌가. 그런 각성을 위해 꼭 감옥에 갇히는 경험이 필요한 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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