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우르르 서서 쌀 100포대 전달하는 사진 찍고 '이웃돕기' 했다고 할 겁니까?"
최근 점심 자리에서 금융인 A씨가 한 말이다. 듣자마자 며칠 전 타 금융사에서 비슷한 행사를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걸 겨냥했을까. 도발적 발언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힘겹게 지나왔다. '언제쯤 어둠이 끝나고 빛이 보일까' 하는데 고물가·고환율·고금리 삼중고를 맞닥뜨렸다. 그는 이렇게 모두가 힘든 시기에 금융권이 기업·가계대출 취약 차주의 부담을 덜어 줄 고심을 하기보다 사진 한 장으로 사회적 책무를 다했노라 홍보하는 모양새가 가당치도 않다고 지적했다.
10년여 만에 기준금리 3% 시대에 진입하면서 취재 현장에서는 이자 갚기만으로도 허덕이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대구 수성구에 사는 B(39) 씨에게 1년 6개월 전 내 집 마련과 함께 받은 대출은 늪이 됐다. 기준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해도 연 1% 후반 수준이던 금리에 원금은 나중에 천천히 갚고 매달 이자만 갚는 조건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렸지만, 지금은 그게 독이 됐다. 올 들어 매달 은행에 내는 이자만 140만 원 수준이다. 갈수록 이자가 불어나니 다른 대출 상품으로 갈아탈까 싶다가도 주저하게 된다. 그간 은행에 준 돈 모두가 헛돈을 쓴 게 된다는 생각에서다.
기업도 아우성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 제조업체 307개사를 대상으로 금리 인상 영향과 대응 실태를 조사했는데 응답 기업의 약 62%가 '고금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이자 부담에 따른 자금 사정 악화(68%)와 설비투자 지연 및 축소(29%) 등을 주요 어려움으로 꼽았다.
한국은행이 내달 24일로 예정된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미 기준금리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추가 '빅 스텝'을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달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이 13년 만에 연 7%를 넘어섰는데, 이번 빅 스텝이 반영되면 8% 선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설상가상이다. 한국은행 자체 분석에서도 이번 빅 스텝으로 가계와 기업을 합해 늘어나는 이자 부담은 12조2천억 원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치솟는 이자 부담에 중도상환수수료(대출을 만기 전에 갚으면 내야 하는 수수료)를 물더라도 빚을 갚으려는 이들이 속출한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신용대출 중도상환 건수는 33만7천408건이다. 지난해 전체 신용대출 중도상환 건수가 34만170건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불과 8개월 만에 비슷한 규모의 중도상환이 이뤄졌다. 월평균 기준으로도 지난해 2만8천347건에서 올해 4만2천176건으로 149% 급증했다.
다시 A씨 이야기다. 그도 금융업 종사자다. 그렇지만 그는 냉소했다.
"요즘 중도상환수수료를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잖아요. 과거 저금리 대출을 금리 급등 시점에 중도상환 받으면 은행은 더 높은 이자율로 자금을 운용할 수 있잖아요. 이게 이자 장사예요. 돈을 안 갚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 같이 힘들 때는 은행이 중도상환수수료 부담이라도 덜어 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그는 한 시중은행 이야기를 전했다.
"누가 시키기 전에 먼저 '앞으로 2년간 분할상환 원금 미뤄 주겠다, 이자 유예해 주겠다, 20년까지 장기 분할 대환 하겠다'고 하잖아요. 우리 사회가 다 같이 이 어려움을 뚫고 나간 다음에 뭘 이야기해도 되는 거 아니겠어요? 쌀 나눠 주는 게 따뜻한 금융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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