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문화예술지원에 있어서 주로 인용되는 원칙 중의 하나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이다. 이 원칙은 영국예술위원회와 영국 정부의 관계를 설명할 때 자주 쓰이며, 이런 관계에 있는 기관을 '팔길이 기관'이라고 한다. 때로는 준정부조직 또는 준자율적 비정부조직이라는 의미에서 'QUANGO'(Quasi-Autonomous NGO)라고도 불린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중앙정부, 그리고 지방정부가 설립한 공립문화재단과 지방정부가 그러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팔길이 원칙'에 근거해 공공 문화예술서비스를 조직화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아웃소싱을 할 수도 있고 정부 조직의 일부 기능을 분리하여 '팔길이 기관'을 설립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후자의 형태가 많은 것 같다. 예를 들면 '신일본필하모니교향악단'의 거점인 도쿄 스미다구 '트리포니홀'은 5년마다 심사를 거쳐 스미다구가 민간 문화재단에 그 경영을 아웃소싱하고 있지만, 대구시 사업소였던 '대구콘서트하우스'는 팔길이 기관인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의 소속이 되었다.
그 형태가 어떻든 '팔길이 원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문화예술의 자율성 확보이다. 즉 '팔길이 기관'에 대한 정치적 영향은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리들리(Ridley)는 팔길이 기관인 예술위원회는 정부로부터 매년 보조금을 받지만,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둠으로써 정부의 영향력이나 간섭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으며 정부는 직접 개입하지 않고도 예술을 장려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 팔길이 기관인 공립문화재단들은 재정적 독립성이 낮아 돈줄을 쥔 사람들이나 감독기관의 눈치를 봐야 하고,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구미에 맞추려 할 수도 있다. 또 시민에게 직접 책임을 지는 관료제도의 대용물로써 관료를 대신해 그 책임을 질 수도 있다. 만약 정치나 행정의 간섭이나 영향을 심하게 받게 되면 조직은 무기력해지고, 원래대로 지방정부의 한 기능으로서 돌아가는 것이 낫다는 푸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팔길이 기관이나 준정부 자율기관(QUNAGO)이 공공서비스에 있어서 정부의 탄력성과 정책의 지속성을 보여 주는 것임을 알 필요가 있다. 문화예술과 관련한 팔길이 기관은 공공서비스 기관으로서의 바람직한 운영을 위해 권력화와 관료화를 경계해야 하며, 기관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환기하고 자신의 사명을 재조명해 보아야 한다. 영리단체의 성과는 금전적 이익이지만 비영리단체인 팔길이 기관의 성과는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명료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드러커(Drucker)는 '비영리단체의 경영'이라는 책에서 사명의 중요성을 지적하면서 더 나아가 이것이 성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효율적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요즘 문화와 관련해서 지방정부의 팔 역할을 하는 공립문화재단들의 조직 규모는 커지고 있지만, 필요한 인력이나 예산 부족으로 고유의 사업을 할 여력 없이 대행사업과 위탁사업 추진에만 바쁘다는 말을 듣는다. 그래서 요즘 이런 우스갯소리를 한다. "문화재단들 요즘 바빠 혼수상태 아이가." 혹시 지도는 있는데 나침반이 없이 여기저기를 헤매며 자원을 소모하지는 않는지? 그러나 공립문화재단들은 시민들과 소비자들에게 지방정부의 문화예술서비스를 전달하는 바람직한 도구로서 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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