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에드워드 즈윅
출연: 브래드 피트, 안소니 홉킨스
1913년 미국 몬태나주. 전쟁을 피해 평화로운 곳에 안착한 러드로우 대령(안소니 홉킨스)과 세 아들 알프레드(에이단 퀸), 트리스탄(브래드 피트), 사무엘(헨리 토마스). 유학을 떠났던 막내가 약혼자 수잔나(줄리아 오몬드)를 집으로 데려오면 고요했던 목장에 웃음이 깃들기 시작한다. 그것도 잠시, 세 아들 모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면서 슬픈 운명이 이들을 찾아온다. 셋 모두 참전하지만 사무엘이 독일군에 의해 전사하면서 끈끈했던 형제애는 무너지고, 알프레드와 트리스탄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수잔나 또한 수난 속에 던져진다.
가을만 되면 떠오르는 영화가 '가을의 전설'이다.
이 영화의 원작은 소설가 짐 해리슨의 중편 소설이다. 'Legends of the Fall'이 영어 제목이다. 여기서 'Fall'은 '몰락'의 의미다. 한 가족의 흥망성쇠를 그린 '몰락의 전설'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Fall'을 가을로 해석해서 '가을의 전설'로 작명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가을만 되면 전설처럼 떠오르는 마법의 힘을 얻는다.
'가을의 전설'은 아버지 러드로우와 세 아들, 그리고 비운의 여인 수난나의 삶과 애증을 아름다운 자연과 웅장한 음악으로 그린 대서사시 같은 영화다.
계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개인의 삶처럼 한 가문의 흥함과 쇠함 또한 계절에 대입할 수 있을 것이다. 러드로우 대령은 미국 정부의 인디언 정책에 환멸을 느껴 군대를 떠나 몬태나에 정착한다. 아름다운 아내와 세 아들과 함께 목장을 경영하며 편안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아내가 떠나고, 1차 세계대전이 터져 세 아들이 참전하면서 가문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영화의 배경은 바로 이 가문의 가을과 같은 시점이다.
세 아들과 아버지 또한 계절을 닮았다. 막내 사무엘은 설익은 봄이고, 풍성한 삶을 사는 맏아들은 여름이다. 아버지는 세월을 견디며 혹독한 삶을 살아온 겨울과 같은 이미지다. 아내가 추운 몬태나를 견디지 못하고 떠난 것은 결국 겨울처럼 차가운 남편을 떠난 셈이다.
그리고 온통 가을의 이미지를 가진 것이 늦가을에 태어난 둘째 트리스탄이다. 그는 강인하며 반항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다. 거대한 회색곰 그리즐리의 영혼을 갖고 태어났다. 전장에서 동생이 죽자, 적진으로 뛰어들어 적군을 살육하는 야수가 된다. 몸 안에 갇혀 울부짖는 야성은 사랑을 해도, 거친 바다로 줄달음쳐도 식을 줄 모른다.
자기 파괴의 길을 걷기도 하지만, 결국은 가둘 수 없는 생명력의 확인 같은 것이었다. 더 차가워질 대지에 뜨거운 생명을 심는 달까. 트리스탄의 채울 수 없는 목마름은 곧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가을의 느낌을 전해준다. 영화를 보고 나면 '가을의 전설'이란 제목이 나름 서정적이며 상징적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브래드 피트를 위한 영화다. 그는 금발에 뇌쇄적인 눈빛과 표정으로 관객을 압도하고, 영화의 극적 구성 또한 브래드 피트의 매력이 한껏 발휘되도록 짜였다.
그는 1991년 '델마와 루이스'로 깜짝 등장했다. 델마를 유혹하고 떠난 사기꾼으로 짧게 출연했는데, 배역이나 분량은 형편없었지만, 관객들의 뇌리에 각인되기에는 충분했다. 제임스 딘 같은 귀공자풍 반항아 신예의 등장이었다. 그의 이미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흐르는 강물처럼'(1992)에서 폭발했고, '가을의 전설'로 정점을 찍었다. 인디언처럼 긴 금발에 이글대는 눈빛, 가슴 속 활화산처럼 뿜어대는 존재감은 말 그대로 전설이 됐다.
'가을의 전설'은 요즘 보기 드물게 대서사의 웅장함을 갖춘 영화다. 일반 영화가 사랑과 욕망, 삶과 성공의 스토리를 개인의 세계에 국한 시킨 것에 비해 대서사시는 역사와 시대라는 거대한 세계에 한 개인을 녹여 넣는다. 그래서 시대를 거스르는 힘과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가 교차한다. 세 아들과 모두 애증의 관계를 유지하다 결국 비운의 삶을 마감하는 수잔나의 삶처럼 말이다.
수잔나는 트리스탄을 사랑하지만, 결국은 알프레드의 품으로 들어가고, 인디언의 딸 이자벨이 트리스탄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나 싶지만, 그녀 또한 경찰의 총격으로 허무하게 사망해 버린다. 인간의 존재라는 것이 얼마나 약한가.
이 영화 통틀어 가장 강력한 캐릭터가 트리스탄이다. 한국 관객에겐 브래드 피트의 매력만 남겠지만, 사실 그는 미국 정신의 상징적인 캐릭터다.
그는 회색곰 그리즐리의 분신이다. 늙은 트리스탄이 곰과 싸우다 사라진 에필로그 또한 곰의 영혼으로 돌아간 트리스탄의 정신을 보여준다. 회색곰은 미국의 용맹함과 힘을 상징한다. 특히 제26대 미국 대통령 테어도어 루즈벨트(1858~1919)가 회색곰 찬양론자였다. 오죽했으면 곰 인형인 테디 베어가 그의 애칭인 테디에서 비롯됐을까.
트리스탄은 불굴의 인물이다. 고난과 역경을 딛는 개척 정신의 뉴프런티어다. 북미 원주민인 인디언에게 행했던 백인의 반문명적 폭력에 대한 속죄도 이행한다. 특히 조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며 가족과 집을 스스로 지키는 과업을 충실히 따른다. 그는 미국 정신의 전설이다.
영화는 이 가문의 파란만장한 과정을 모두 목격한 인디언 원스탭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원스탭의 첫 대사가 "어떤 이는 크고 분명한 내면의 소리를 듣고, 들리는 그대로 살아간다. 그런 사람은 미치거나 아니면 전설이 된다"이다. 자기 속에서 뚜렷하게 외치는 목소리를 듣고, 미친 듯 살아간 트리스탄의 전설적인 삶을 압축한 대사다.
며칠 전 지인들과 함께 '가을의 전설'을 관람하는 시간을 가졌다. 예전에는 트리스탄의 삶에서 범접할 수 없는 이질감이 느껴졌는데, 다시 보니 그에게서 우리의 그림자가 오버랩되기도 했다.
하긴 트리스탄만 그렇게 전설처럼 살았을까. 우리 모두가 그랬지 않나? 끝없이 방황하고, 미친 듯 사랑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혼신을 다한, 그런 삶 말이다.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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