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민의 나무오디세이] ‘살아있는 화석’ 은행나무의 충절

대구 달성군 도동서원 앞의 은행나무
대구 달성군 도동서원 앞의 은행나무

은행잎 바람에 떨어져 온 땅이 금으로 덮이니

(鴨脚飄零滿地金·압각표령만지금)

뜰 가에 바람 소리 다시는 들리지 않네

(庭邊無復得風吟·정변무복득풍음)

밤이 오니 다시 성긴 그림자 사랑스러워

(夜來還愛扶疎影·야래환애부소영)

서너 번 배회하니 맑은 뜻이 깊어지네

(三四徘徊淸意深·삼사배회청의심)

송시열의 시문집 『송자대전』 제2권에 나오는 칠언절구(七言絶句) 「압각수를 읊다」(詠鴨脚樹)이다. 압각수는 은행나무의 잎 모양이 오리발과 같다고 해서 부르는 말이다. 노란 은행나무 잎이 바람에 떨어진 뒤 앙상해진 나뭇가지가 만추의 정취가 아닌가 싶다.

경북 구미시 농소리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경북 구미시 농소리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옛 선비들이 공부하는 향교나 서원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는 이유는 공자가 제자들과 강학했던 행단(杏壇)의 고사 때문이다. 중국 송나라 때 산동(곡부)의 공자묘 대전(大殿)을 이전 확장하면서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강당(講堂)의 옛 터가 훼손되는 것을 막으려 공자의 45대손인 공도가 이곳에 살구나무를 심었고, 금나라 때에는 행단(杏壇)이라 쓴 비를 세웠다. 행(杏)은 살구나무라는 뜻도 있지만 은행나무라는 의미도 있다. 조선의 선비들은 행단의 나무를 은행나무로 여겨 배움의 공간 곳곳에 사대부의 상징물로 심었다.

◆침엽수로 분류되는 까닭

10월 하순은 온통 황금빛 은행나무의 고운 자태가 절정이다. 나무 아래엔 은행 열매들이 떨어지고 부채꼴 은행잎은 샛노란 수를 놓는다. 도심과 지방도의 가로변, 관공서의 뜰, 조용한 시골 동네를 말없이 지키고 있는 크고 작은 은행나무들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대기오염에 강하고 환경 적응력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경북 청도군 대전리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경북 청도군 대전리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은행나무가 흔하다고 해서 은행나무를 쉽게 보면 안 된다. 천년 이상의 수명을 자랑하며 오랜 세월 범상치 않은 모습으로 우리 곁을 지켜온 나이 많은 은행나무가 갖는 정신적 의미와 가치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학교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은행나무를 교목이나 구·시·군 나무로 삼고 있다. 대구 동구, 북구, 수성구와 경북 안동시, 영주시, 경산시, 영천시, 성주군, 예천군의 상징 나무가 은행나무다.

경북 영양군 서석지 은행나무
경북 영양군 서석지 은행나무

은행이란 이름은 그 열매의 모양이 노란 작은 살구를 닮았고, 속의 핵과가 하얗다고 해서 붙여졌다. 은행의 핵과를 백과라고 부르는 것도 흰색 때문이다. 은행나무를 심으면 손자 대에나 열매를 얻을 수 있다고 해서 '공손수(公孫樹)'라 부르기도 하고 '행자목(杏子木)'이라는 별명도 지니고 있다.

오래된 은행나무에는 '유주(乳柱)'라는 혹이 생기기도 한다. 생김새가 여인의 유방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기능은 공기 뿌리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은행나무 유주. 기근의 일종이다.
은행나무 유주. 기근의 일종이다.

은행나무는 2억7천만 년 전, 늦추어 잡아도 공룡시대인 쥐라기(1억3천500만~1억8천만 년 전) 이전부터 지구에 터를 잡아왔다. 진화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지금과 거의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찰스 다윈은 '살아있는 화석(living fossil)'이라고 했다. 이 말은 오랜 진화의 역사 속에서 자기만 살아남고 다른 친척뻘이 모두 사라져버린 종을 가리킨다. 그만큼 환경에 잘 적응하며 살아왔다는 뜻으로 읽힌다.

은행나무는 식물분류학으로 보면 1목, 1과, 1속, 1종이다. 은행나무는 넓은 잎을 가졌음에도 침엽수로 분류된다. 나무 종류를 보다 정확하게 나눈다면 '은행수, 침엽수, 활엽수'로 분류해야 하지만 하나의 종밖에 없는 은행나무 때문에 따로 떼서 취급하기가 너무 불편하니 편의상 침엽수에 포함시킨다는 게 학자의 견해다.

은행나무 열매
은행나무 열매

은행나무는 암수딴그루로 높이 50m, 줄기 지름 4m에 이른다. 꽃은 4~5월에 잎과 함께 피는데 눈에 확 띄지 않아서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수꽃은 연한 황록색이며, 암꽃은 녹색이고 잎 사이에 1~6개씩 달린다. 놀라운 사실은 은행나무 수꽃의 꽃가루가 암꽃에 도착하면 섬모를 가지고 있는 정충의 운동으로 수정하는 점이다.

은행 열매는 핵과(核果)로 럭비공 모양이며 10월에 황색으로 익는다. 바깥껍질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날 뿐만 아니라 맨손으로 함부로 만지면 옻과 같은 피부 알레르기 반응이 생기기도 한다. 바깥껍질을 벗긴 백과라고 부르는 열매의 속에 든 알맹이에는 독이 있어서 익혀 먹어야 한다. 또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목재는 단단하고 질이 좋아 바둑판, 불상, 가구, 밥상을 만드는 데 주로 이용된다. 특히 은행나무로 제작한 대들보를 행량(杏梁)이라고 하는데 가옥이 고귀하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경북 영주시 내죽리 은행나무(일명 압각수) 영주시 제공
경북 영주시 내죽리 은행나무(일명 압각수) 영주시 제공

◆영주 순흥과 흥망성쇠 함께한 압각수

압각이 다시 살아나면 순흥이 회복되고

(鴨脚復生順興復·압각부생순흥부)

순흥이 회복되면 노산도 복위된다

(順興復魯山復位·순흥부노산부위)

조선 실학자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 제6권 「만물문」(萬物門)에 실린 '압각'(鴨脚)이란 제목의 글에 나오는 순흥 사람들의 구전(口傳)이다. 조선 후기 순흥도호부 지역을 소개한 읍지 『재향지』(梓鄕誌)의 「순흥지」(順興誌) '고적 압각수'(古蹟 鴨脚樹)에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금성대군 신단 이웃에 있는 은행나무를 말한다. 이 나무는 순흥의 아픈 역사와 고을 사람들의 꺾이지 않는 기개를 함께 간직한 소중한 나무다.

여기에는 단종복위운동에 얽힌 정축지변(1456년)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함께 한다. 세조 3년에 왕위를 뺏긴 어린 조카 단종을 복원시키려다 순흥(順興)에 귀양 온 금성대군이 격문(檄文)을 돌리고 군사를 일으키려다가 발각됐다. 이에 순흥도호부는 해체되고, 관군들이 죽령을 넘어와 금성대군 무리에 가담한 혐의로 사방 30리 안에 사는 사람을 숙청하는 피바람을 일으켰다.

이즈음 순흥 읍내에 있던 큰 은행나무도 저절로 말라죽어서 밑동만 남게 됐다. 어떤 노인이 지나가며 "은행나무가 다시 살아나면 순흥이 회복되고…"라는 말을 했는데 감개한 지역 사람들은 이야기를 전송(傳誦)했다. 200여 년이 지난 1681년 봄에 죽은 줄 알았던 은행나무에서 비로소 새 가지가 돋고 잎이 피더니 1683년 순흥도호부가 드디어 복설 됐다.

노인의 말처럼 순흥 고을의 흥망성쇠를 같이한 경이로운 이력을 가지고 있는 은행나무다. 뿌리에서 자란 큰 가지는 말라 없어지고, 옆으로 새로 싹튼 맹아지 두 개가 성장해서 멀리서 언 듯 보면 두 그루처럼 보인다.

'디지털영주문화대전'에는 압각수의 나이가 1천200살로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경기도 용문사의 1100년 묵은 은행나무보다 나이가 더 많은 셈이다. 현재 경상북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며, 높이는 30m 정도다.

경북 경주시 운곡서원 은행나무
경북 경주시 운곡서원 은행나무

◆경주 운곡서원 은행나무

정축지변에 연루된 사람 중에는 죽림 권산해(權山海)도 있었다. 성삼문(成三問) 등과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 발각돼 투신 자결하고 만다. 때문에 가족들은 변방으로 옮겨 살아야 했으며 자손들은 100년 동안 벼슬하지 못하는 고통을 겪었다. 세월이 흘러 숙종 때 대부분의 사육신들이 복권됐지만 죽림은 누락됐다.

죽림의 12대손 권종락(權宗洛)이 정조에게 눈물로 호소해, 권산해는 1789년 복권되고 금성단에 배향됐다. 권종락은 금성단의 압각수 가지 두 개를 가지고 400여 리나 떨어진 경주 운곡사(雲谷詞)에 한 달 만에 도착해서 심었다. 운곡서원의 은행나무는 순흥 금성단의 충성스러운 압각수의 분신이다.

조선후기 문신 윤기(尹愭)의 시문집인 『무명자집』 2책의 '죽림(竹林) 권공(權公)이 벼슬을 추증 받은 것을 축하하며'라는 율시에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들어있다.

경북 안동시 용계리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경북 안동시 용계리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대구경북 향교·서원의 터줏대감 노릇

선비의 고장인 대구 경북에도 많은 은행나무 노거수가 자리 잡고 있다. 천연기념물인 안동 용계리, 구미 농소리, 김천 조룡리, 청도 대전리, 청도 적천사의 은행나무가 우람한 위용을 뽐내고 있다.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는 임하댐 수몰지역인 길안초등학교 용계분교 운동장 한편에 서 있던 것을 1990년부터 1993년까지 4년에 걸쳐 23억원을 들여 지금의 자리에 옮겼다. 키가 31m에 가슴 높이 줄기 둘레가 14m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인데 15m의 높이로 흙을 쌓아 현재 위치로 들어 올리는 상식(上植) 공사에 성공한 경우다.

청도 대전리와 구미 농소리에 있는 은행나무는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적천사의 은행나무는 절 입구에 서있어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천연기념물은 아니지만 대구 달성군의 도동서원과 경북 영천시의 임고서원, 봉화 봉화향교 등지의 은행나무 노거수는 그 지역 명물로 통한다.

한훤당 김굉필을 배향한 달성군 도동서원에도 400여 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한훤당의 외증손인 한강 정구가 도동서원 중건 기념으로 심었다고 알려져 있다.

은행나무가 국내에 흔하지만 원산지는 중국이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불교 전파와 함께 들어온 것으로 짐작만 할 뿐이다.

성큼성큼 남쪽으로 내려오는 단풍이 어느새 절정에 다다랐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가까운 은행나무에게로 다가가 자연의 숨결을 느껴보자. 샛노란 색깔의 추억은 인생의 덤이다.

이종민 선임기자
이종민 선임기자

선임기자 chungham@imaeil.com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