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이국에서

이승우 지음/ 은행나무 펴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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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지음/ 은행나무 펴냄
이승우 지음/ 은행나무 펴냄

종교적이고 관념적 통찰로 생의 이면을 파헤치는 작품을 그려온 소설가 이승우가 5년 만에 장편소설 '이국에서'를 출간했다.

현대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두루 수상한 작가가 2018년 5월부터 약 10개월간 문학잡지 '악스트'(Axt)에 연재한 작품을 엮었다. 떠날 수밖에 없는 한 인물이 떠난 곳에서 벌어진 재난적 상황이 이국에서도 동일하게 벌어지는, 공동체의 추악한 실태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소설의 도입부는 모략과 암투가 넘치는 정치 소설처럼 읽힌다. 우리가 목도한 현실정치의 단면을 그려낸 것 같기도 하다.

인구 300만 명 광역시 시장의 측근인 '황선호'는 '원치 않는 선택'을 해야 하는 인물이다. 지방 선거를 6개월 앞두고 시장의 정치 자금 스캔들이 터졌기 때문이다. 대권에 욕심을 내는 시장으로선 반드시 재선에 성공해야 하는 상황. 뇌물의 액수가 큰 만큼, 유야무야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긴 회의 끝에 황선호가 아이디어를 냈다. 바로 책임자의 완벽한 한시적 실종. 담당자 한 명이 모든 비리와 부정을 다 뒤집어쓰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선거에서 승리할 때까지 6개월 정도만 완벽하게 종적을 감추면 된다.

아이디어를 낼 때만 해도, 황선호는 정작 자신이 독박을 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본인의 제안에서 자신은 외부에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시장은 황선호에게 그 담당자가 돼달라고 부탁한다. 독신으로 '몸이 가볍다'는 이유에서다.

자기가 들어갈 구덩이를 판 황선호는 떠밀리듯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해외로 떠난다. 가상의 아프리카 국가인 '보보민주공화국'. '하늘이 투명하고 태양이 순수'한 곳이다. 두 대륙, 세 도시를 경유해 26시간이 꼬박 걸려 도착한 그곳엔 한국인 이민자는 물론 관광객도 거의 없다. 유럽의 식민지배 이후 내란을 겪고 군부독재가 계속되는 혼란한 정세 탓이다.

낡은 호텔에 몸을 숨긴 채 술로 하루를 보내면서도,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해준 말이 뇌리에서 맴돈다. "네가 원하는 일인지 생각해라. 너를 위한 일인지 생각하라는 말이 아니다. 남을 위해 일하더라도 네가 원하는 일을 하라는 뜻이다."

원치 않았음에도 떠밀려 온 이국. 하지만 그곳에도 불행과 고통은 있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장군 출신 수상의 명령으로, 보보 정부는 한시적 외부인 추방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렇다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황선호는 이미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비리 공무원이 돼 있었다. 모시던 '보스'에게도, 그는 확실하게 버림받았다.

보보에는 황선호처럼 어디에도 정박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친구들의 집'이 바로 이들의 공동체다. 황선호를 그곳로 이끈 쟝은 이렇게 말한다.

"모두들 사연이 있어요. 대를 이어 살아온 자기 나라를 그냥 떠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살 수 없어 떠났지만 이 친구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떠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다시 돌아가려면 그 곳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바뀌어야겠지요. 그래서 떠도는 거예요."

여기서 만난 인연은 그를 성숙시키고, 나아가 스스로를 구원하게 만든다. 고향을 떠났음에도 여전히 과거에 묶여 사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속박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간의 본능까지. 소설은 '머무르거나 떠돌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 속에서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를 말한다. 356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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