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느슨한 관계

백창하 연출가

백창하 연출가
백창하 연출가

가끔 장난스럽게 동료들한 이러한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난 느슨한 관계가 좋다."라고. 그런데 사실 이 말은 진심이다. 나의 포지션이 연출가이기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작업을 할 때와 그냥 평소의 모습이 매우 다르다. 일할 땐 선이 확실하고, 크게 감정을 드러내거나 하지 않는다. 차갑고 냉정하게 편이다. 물론 오래 작업을 해온 동료들은 나의 본 모습을 잘 알고 있다. 나라는 인간은 손이 많이 가고, 매사에 덜렁거리며 남 눈치도 많이 보고 무엇보다 멍청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의 본 모습을 잘 알고 있는 동료들은 나를 잘 챙겨 주고 내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스스로 일을 찾아서 척척 한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가끔 이것이 영 좋지 못한 일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바로 공과 사가 구분이 안 되는 경우가 오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너무 친하기에 나를 너무 잘 알아서 생기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작업할 때 느슨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우리는 다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너무 가까우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지켜야 할 선들이 무너지기 쉽다. 사소한 선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전체적인 시스템이 불안정해지며, 이러한 것들이 쌓여 최악의 경우로 치닫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이것이 공연에 참여하는 한 인원으로 필요한 작업을 하되, 가능한 관계를 느슨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려는 이유다.

특히, 연출로 작업을 할 땐 더욱 그러하다. 사실 공연예술계는 종합예술 장르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들며 관계를 맺고 협업을 하며, 그 과정 또한 절대 만만하지 않기에 서로 의지하기도, 마음을 나누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로의 관계에 거리를 두기는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연출부는 많은 요소를 관리해야 하고 때론 모진 이야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관계가 너무 친하면 친할수록 그 선을 지키기 어려워진다. 그러기에 일부로 느슨하게 관계를 유지하고, 선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사실 이러한 행동은 전체의 시스템을 지키고 작업에 참여하는 동료들을 지키고자 선택을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가끔은 무척이나 외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제나 한 걸음 물러나, 냉정함을 유지하고, 선을 넘을 땐 싫은 소리도 하고, 자칫 타협하기 쉬운 일들에선 정해진 것들을 지키라고 딱딱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는 모두를 지키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엄청난 리더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압도적으로 똑똑하거나 뛰어난 능력을 갖춘 것도 아닌지라 일을 할 때 만큼은 느슨한 관계 속에서 프로페셔널한 과정을 지속하는 것이 모두를 위한 선택이라 믿는다. 또 함께 하는 동료들이 그들을 애정하는 진심을 알아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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