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전 6시쯤 평택 SPL(주) 제빵공장에서 23살의 여성 노동자가 샌드위치 소스 배합기에 상반신이 끼이는 사고로 숨졌다. 소스 배합기에는 덮개도, 긴급 멈춤 버튼도 없었다. 2인 1조 근무 규정이 있었지만 비상시 도와줄 이는 없었다. 앞치마나 손가락이 끼이는 사고는 전에도 발생했지만 개선되지 않았고, 안전교육도 제대로 실시되지 않았다. 그녀는 늘 과중한 업무로 인한 피로감을 호소했었다고 한다. 즐겨 먹던 '빵'의 잔혹한 실체가 드러나자 대중들은 분노했다.
만약 파리에서 빵을 만든다면 어떨까. 프랑스의 법정근로시간은 35시간으로 노조가 합의하거나, 근로감독관이 승인해야만 연장근로가 가능하고 연간 220시간으로 제한된다. 초과한 만큼 가산 임금과 의무 휴일이 보장되어야 한다. 야간근로는 사회적 필요가 분명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되고 야간근로자에게는 건강검진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
한국은 어떤가. 법정 근로시간은 40시간이지만, 주당 12시간까지 초과할 수 있다. 야간근로는 광범위하게 허용되고 가산금만 준다면 가능하다. SPL평택공장에서 노동자들은 주야간 2교대로 근무했으며, 1시간 휴게시간을 빼고 주 52시간을 꼬박 채워 일했다.
프랑스에는 SPC그룹과 유사한 르뒤프(Le Duff)그룹이 있다. 프랜차이즈 빵집인 브리오슈도레(Brioche Dorée)와 냉동반죽을 생산하는 브리오더(Brioder)를 소유하고 있다. 르뒤프는 ESG(환경, 사회, 참여) 경영에 대한 공시자료에 계열사의 산업재해율을 기록하고 있는데, 재해율을 낮추기 위해 '건강·안전·노동조건위원회'(CSSCT)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원인을 상시적으로 평가한다. 브리오더는 노동자의 근골격계 질환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맞춤형 장비, 소음과 먼지 노출 강도에 대한 제한규정, 안전교육과 외부감사제도를 강조하고 있다.
SPC도 ESG경영을 내세우며, 우리 사회의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대상으로 자립·자선·복지사업을 수행하여 사회 일반의 복지 증진에 기여코자 SPC행복한재단을 설립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파리바게트는 안전을 중시한다며 홈페이지에 "SPC 식품안전센터에서 4개 팀, 50여 명의 안전 전문인력이 매의 눈으로 관리, 감독, 연구한다. 고객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다"고 쓰고 있다.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과 고객과의 신뢰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어디에도 빵을 만드는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이제 기업은 이윤과 상품으로만 평가받지 않는다. 시민들은 환경을 파괴하고, 노동자를 위험에 빠뜨리고, 온실가스를 마구 내뿜는 기업에 저항하고 있다. 은행도 사회적 책임 경영이 부실한 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한다. 부도덕한 이미지를 가진 기업에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국제적 상식이다. 노동자가 사망사고를 당했는데도 해외 진출을 호들갑스러게 자축하는 SPC는 언제쯤 국제적 상식을 깨우칠까.
동네 빵집이 죄다 사라진 자리에 우후죽순 생겨난 프랜차이즈 빵집은 누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걸까.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 기계의 일부가 되어 밤새 만들어낸 반죽이 전국 3천400개 매장으로 공급된다. 동료가 사망 사고를 당해도 반죽기는 멈추지 않았다. 오늘도 '빵'은 기계와 노동자와 도로와 체인점이라는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우리 동네까지 온다. 쉴 틈없이 돌아가는 이 컨베이어벨트는 왜 멈춰서는 안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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