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대표도서관이 2024년 3월 대구 남구 대명동 미군 캠프워커 일대에 완공될 예정이다. 이곳은 1921년에 건설되어 일제 강점기 내내 일본군 경비행장 및 탄약고로 사용되다가, 해방 직후에는 국군 경비행장으로 사용되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미군이 공군기지로 사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한민국 땅이었으나, 거의 10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의 땅이 아닌 시절을 보냈다.
이제 그 자리에 대구도서관이 들어서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 나오는 그 빼앗긴 들도 바로, 앞산 밑인 캠프워커 일대다. 대구도서관 부지의 상징성은 대구 역사와 대구 문학사를 관통하는 남다른 곳이다.
도서관이나 문학관에는 시비(詩碑)가 많이 들어선다. 최근에는 신축 아파트가 들어설 때도 시비를 세운다. 일례로 대구 북구 칠성동 인근 모 아파트에는 정호승, 도종환 시인 등의 시비가 있다. 만약 대구도서관에 시비를 세운다면, 누가 가장 좋을까. 학벌과 진영 논리, 친소 관계 등에 함몰되지 않고, 문학적인 업적과 활동에서 신망과 존경을 두루 받으며 동시에 이런저런 비판에서 자유로운 분으로 누가 있을까. 두 분이 생각난다. 2004년 작고한 구상 시인과 2021년 작고한 문인수 시인. 문인수 시인은 구상 시인보다 나이가 스물여섯 살 정도 아래다. 필자는 특히 구상 시인에게 주목한다.
1956년 발간한 구상 시인의 『焦土(초토)의 詩(시)』(청구출판사) 시집 표지 그림은 화가 이중섭의 작품이다. 이중섭이 세 살 위인데 이들의 교류는 1956년 가을, 이중섭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당시 그의 죽음을 가장 슬퍼하고 안타까워했던 사람이 바로 구상 시인이라고 한다. 구상 시인의 대표작 '초토의 시'가 발표되었던 곳, 그리고 피란 시절 문화예술이 가장 꽃피던 곳이 바로 대구이다. 구상 시인의 본명은 구상준이며,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이 본적지이나,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서 태어났다. 열다섯 살 되던 해에는 가톨릭 사제가 되고자, 베네딕토 수도원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3년 만에 환속하고 한국전쟁 때 대구에 내려왔다.
"아버지 인생에서 대구에서의 시간이 갖는 의미는 굉장히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당시 문학의 중심부인 대구를 거닐며, 향촌동에서 피란 온 문화예술인들과 교류했습니다."
이는 시인의 딸인 구자명 소설가가 2020년 7월 3일에 지역 모 언론사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구자명 소설가는 아버지가 왜관에 살림집이 있었지만 대구에 자주 드나들면서 문학 활동을 이어갔고, 향촌동에서 문인·음악가·무용인·화가 등 여러 예술가와 소통했다고 한다. 여담이긴 하지만 야구선수 구자욱의 종증조할아버지가 구상 시인이다. 2021년 12월 18일에 방영한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구자욱은 그의 이름도 구상 시인이 직접 지어 주셨다고 했다. 현재는 구상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구상문학상도 운영되고 있다. 시인의 시집 '초토의 시' 출판기념회는 당시 대구 북성로의 '꽃자리' 다방에서 열렸다. 지금도 그 자리에 '꽃자리'라는 이름으로 카페가 있다.
대구시는 대구도서관을 복합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도서관의 기능적인 역할은 물론, 시민과 소통하고 호흡하는 문화공간으로서의 가치를 더하고자 한다. 구상 시인은 노벨문학상 후보로 두 번이나 거론될 정도로 문학적 업적이 뛰어나다. 또한 그의 스토리는 따로 스토리텔링을 입힐 필요 없이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대구도서관과 인연 지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만약 시비를 세운다면, 우리에게 편하게 다가올 작품으로 구상의 시 '꽃자리'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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