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다부동 전투 영웅 고 백선엽(1920~2020) 장군의 장녀 백남희(74) 씨가 지난달 27~28일 1박2일 일정으로 경북 칠곡군을 방문했다. 참전용사를 만나 위로와 감사를 전하고 칠곡군의 대구 군부대 유치를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제2연평해전 때 북한 포탄에 큰 상처를 입은 권기형 씨를 위로하고, 북한의 잠수정 폭침으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와 아픔을 함께 했다.
미군 장병의 유해를 찾아달라는 손 편지를 쓴 유아진 학생을 격려하고, 칠곡군 보훈회관을 찾아 아버지를 대신해 감사 인사도 했다.
또 칠곡군 대구 군부대 유치 홍보대사 자격으로 제9회 낙동강세계평화 문화 대축전에 참석해 군부대 유치 후보지로서 칠곡군의 뛰어난 경쟁력과 역사적 배경을 알리고, 미군 지휘관들에게는 칠곡군이 한미동맹의 고향임과 대구 미군 부대 유치에 관심과 지원을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백 씨는 바쁜 일정에도 매일신문사를 방문해 백선엽 장군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줬다.
-백선엽 장군을 이야기하면서 다부동 전투를 빼놓을 수 없다
▶다부동 전투는 대한민국 역사와 운명을 좌우한 전투이기도 하지만, 최초로 한국군과 미군의 합동전쟁이 시작된 곳이다. 첫 한미 전투에 실수를 해서도 안됐고, 당시 미군 마켈러스 대령은 아버지가 후퇴하면 자기네 미국 군 다 철수한다고 그런 적이 있었다. 아버지한테는 그야말로 전투 하나가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전투였다.
-생전 한미동맹을 특히 강조하셨다
▶아버님이 한미동맹을 강조하셨던 이유는 전쟁을 겪으면서 미국 사람, 미국 정부가 어떻고 미국 장군들이 얼마나 훌륭하다는 것을 지켜보시고 한미동맹을 믿으신 것이고 추인을 하신 것이지, 그냥 미국 사람이라서 미국이 강하기 때문에 한미동맹을 강조하신 것은 아님을 저는 말씀드리고 싶다.
동맹이라는 것이 서로 믿음이 있어야지 동맹이 되는 것 아닌가. 이건 제 생각인데 아버님이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하신 그 말씀에 미국 장군들도 그때의 아버지를 보고 한국군을 믿을 수 있었던 걸로 생각된다.
아버지가 워커 장군 등 미국 장군들한테 뭐를 청했을 때 믿고 100% 도우셨다. 또 아버지도 미군을 믿은데서 일어난 한미동맹이지 그냥 보통 분들이 생각하시는 그런 한미동맹하고는 좀 틀린 것 같다.
-워커 장군과 직접 전투도 같이 했다
▶워커 장군뿐 아니라 많다. 그 당시 한국 군대가 미국 군 밑에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어드바이저들이 계속 따라다녔고 신문기자도 따라다녔다. 당시 한국 군대는 초기이고 우리는 준비도 안됐고 교육 받은 것도 없고 훈련 받은 것도 별로 없는 상태서 전쟁이 시작됐다.
하지만 미군의 어드바이저, 장군들은 세계 2차 대전, 어떤 분은 1·2차 대전 다 경험을 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아버님 입장에서는 무조건 배우고 무조건 외워서 좋은 점은 무조건 이행하는 그런 식으로 싸우셨다는 말씀을 하셨다.
-밴플리트 장군이 별 4개를 달아주셨는데
▶밴플리트 장군과 이승만 대통령 두 분이 달아 주셨다. 이 대통령님이 대한민국에는 4성 장군은 왕(王) 만이 4성 장군이야 그러셨다고 한다. 아버님이 미국에 오셨을 때 어느 토요일이었다. 대뜸 밴플리트 장군을 만나러 가겠다고 하셨다. 플로리다 포크 시티라는데 사신다는 것은 어떻게 알아냈지만 코네티켓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 월요일 대사관에 알아보고 연락을 하고 가시자하니 무조건 가야 된다고 했다.
어쨌든 비행기표 사서 올랜도 비행장을 갔고 또 차로 서너시간 만에 도착했다. 포크 시티는 밴플리트 장군 타운과 마찬가지였다.
그분 이름의 도로가 있고, 커다란 오렌지 농장이 있었다. 오전 10시쯤 방문을 했는데, 따님이 휠체어를 밀고 나오셨다. 아버지가 순간적으로 거수경례를 하셨다. 아버지가 누구한테 그렇게 빨리 경례하는 것은 처음 봤다. 밴플리트 장군도 경례를 받으셨고, 두 분은 서로 껴안으셨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어난 나라는 달라도 피눈물을 같이 흘린 전우만이 느끼는 그런 장면을 제가 증인으로 봤다는 것이 너무 흐뭇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아들도 6·25전쟁에 참전했다
▶워커 장군, 밴플리트 장군, 아이젠하워(1952년 제34대 미국 대통령 취임) 장군 아들 등이 6·25전쟁에 참전했고, 워커 장군 아들은 전사했다. 밴플리트 장군 아들은 처음 육군으로 참전했다가 비행기 타는 것을 원해서 공군으로 복무했는데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행방불명 됐다. 아이젠하워 장군 아들은 대통령 당선되기 전부터 와있었는데 당선자 신분으로 한국에 오셨다.
당시 밴플리트 장군과 아버지가 아이젠하워 당선자와 이야기하는 도중에 밴플리트 장군이 (아이젠하워 당선자의) 아들이 어디에 있다는 거를 설명을 했다. 그랬더니 아이젠하워 당선자가 그것은 나에게 이야기 할 필요 없다. 다만 내가 대통령 당선이 됐으니 포로만 되지 않게 해달라 하셨다고 한다. 그 정도로 훌륭한 분들이셨다.
-정치는 전혀 안하셨다
▶그렇죠. 아버님은 본인을 언제나 평범한 군인이라고 설명하셨다. 그랬듯이 아버님의 철칙 하나가 군인은 정치에 참여하면 안된다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아버님을 내무장관을 하라고 그러셨다. 아버님은 그냥 군인으로 남겠다고 했고, 그래서 정치에 참여를 안 하셨다. 대한민국 대통령 중에 한 분만 빼놓고 나머지 대통령님은 다 모셨다. 정치하고는 상관없이 나라를 지키는 것, 대한민국의 자유 평화를 수호하고 한미동맹 굳건히 하시는 것을 평생 목표로 사셨다.
-대전 현충원으로 모실 때 평택에 못 가셨다
▶못 가셨죠. 아버님은 서울 현충원에 못 가시고 대전 현충원 가게 되면 같이 싸웠던 전우들이 있는 서울 현충원 한 번 둘러보고 평택 캠프 험프리 들러 미군에 고맙다는 말과 한미동맹 끝까지 지켜달라는 것 이야기 해달라고 하셨다. 그런데 못 갔다.
-아버지 백선엽 장군은 어떤 분인가
▶많은데 한 가지만 얘기하면 마음이 넓어야 된다고 그러셨다. 그러면서 남희는 마음이 넓어 하셨다. 품고 있는 뜻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말씀드려야 될지 모르겠다. 어려움에 처하면 아버지가 누구라고 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사셨다는 이야기를 곧잘 듣는데, 아버님 돌아가신 후에 이렇게 다니면서 그 얘기가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미군 유해 찾아달라는 손 편지 쓴 유아진 학생을 만났다
▶만나서 반갑고 고맙고 너무 사랑스러웠다. 어린 나이에 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크고, 우리 전우들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어 너무 자랑스러웠다. 또 학생을 보면서 희망도 보이는 것 같아서 너무 흐뭇했다.
-칠곡군민께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아버님은 전쟁은 주민들의 도움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다시면서, 다부동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칠곡군민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항상 고마워하셨다.
아버님의 뜻을 받들고 있는 저로서는 (아버지가) 칠곡에 대해 고마운 마을을 가지셨던 것과 같은 고마운 마음으로 칠곡군과 군민을 위해 뭐든지 하고 싶고, 최선을 다하고 싶다.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알려주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칠곡군 관계자에게) 말씀드렸다. 다부동 전투 당시 칠곡군민들이 아버님을 돕고 희생한 것에 비하면 제가 지금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대담 이동관 편집이사
정리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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