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영국의 총리가 뉴스 코너를 장식한 적이 있었다. 주인공은 최단명 영국 총리의 기록을 세운 리즈 트러스이다. 그녀는 '철의 여인'(Iron Lady)으로 불렸던 대처 전 총리를 정말 존경했다. 한 예로 트러스 전 총리가 외무부 장관이었던 시절에 에스토니아에 있던 영국군을 방문하면서 과거 대처 전 총리와 똑같은 포즈로 탱크를 탄 사진을 찍었다. 차이라면 대처는 그냥 사복 차림이었고 트러스는 방탄조끼를 착용했다는 것이다. 두 총리의 집권한 시기는 경제 위기가 함께 했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트러스는 대처가 아니었다.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코스프레였다. 대처리즘은 경제정책이 아니라 정신의 변화였기 때문이다.
1976년에 영국은 경제 위기로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이런 상황의 70년대를 보내면서 영국 국민은 노동당 대신에 보수당을 선택하게 된다. 1979년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가 된 대처는 쇠퇴하는 경제와 국력을 되살리고자 다양한 정책을 펼치게 된다. 이때 대처 정부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지출을 줄이면서 개혁의 중심에서 떨어져 있던 영국예술위원회를 비롯한 문화기관들에 대해 압박을 가했다. 또 정부의 정책에 따르도록 문화기관의 단체장도 교체했다. 당시 영국정부의 기조는 문화에 대한 지원금 규모는 유지하되 공공부문보다는 민간부문에 확대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공공부문에 대한 삭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 문화지원과 관련해 영국 의회는 영국예술위원회만이 중앙정부 지원의 경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으며, 영국예술위원회의 무사안일주의도 비판했다. 여기에 대한 답으로 영국예술위원회는 자신들의 권한 일부를 지역예술위원회로 이관했다. 이런 과정에서 문화계는 영국예술위원회가 정부의 기관처럼 변해가며 그리고 예술의 창조적 잠재성보다는 정부의 구미를 맞추려는데 더 신경을 쓴다고 비난했다.
문화 현장에서의 두드러진 변화 중의 하나는 과거 권리로서 공공서비스를 누리던 시민들을 돈을 지불하고 공공서비스를 구입하는 고객으로 재정의함으로써 공공 문화서비스도 돈을 지불하고 교환하는 상품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영국정부는 대영박물관이나 미술관들도 무료였던 입장료를 유료화하라고 했다. 당시 대영박물관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기억하겠지만 박물관 경영진은 박물관 서비스를 국민교육의 하나로 보고 입구에 투명 아크릴로 된 기부함을 두고 자발적 입장료를 징수함으로써 반대 의사를 표현했다. 이외에도 문화기관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성과를 내라는 압박도 받았다. 즉 돈값을 하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이런 상황과 궤를 같이해 효율성과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문화기관이나 단체를 법인화하고, 더불어 다양한 재원을 발굴하도록 하고 있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1980년대에 영국문화기관들이 겪었던 일들을 우리나라의 문화기관들이 겪거나, 보조금 삭감을 통해 경영 효율성을 높이라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압박을 받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문화기관들이 외부의 자극 없이 지금의 운영형태나 조직문화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맞는지는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문화와 관련된 사람들이 아닌 일반시민들은 공립 문화기관이나 단체의 운영에 관심이 없다. 그렇지만 더 나은 기관이 되려는 내부적 의지가 없다면 공공 기관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에 문화는 존재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지만, 오늘날의 사회적 기대는 존재 그 이상의 가치를 생성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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