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가까이, 옆에 앉아 있다.

능인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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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이 필요하다. 나를 비롯한 모두가 돌봄의 대상자다.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20대 청년들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믿기 어려운 일이다. 아직도 사실로 받아들이기가 매우 힘든 마음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인지 아무도 정확하게 답변하기가 힘들다.

온 국민이 슬픔과 비탄에 빠져있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고 또 그럴 힘도 없을 것이다. 돌연한 죽음의 경우 남겨진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빠진다. 현실을 부정하게 되고 종종 맹렬한 분노를 느낄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속에 담아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몸과 마음이 우왕좌왕하게 된다.

그 때 우리는 마음을 단속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모두가 상처투성이, 그리고 남은 인생을 두려움으로 짓눌려 살아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엄청난 과거의 상처가 있다. 2010년의 일이다.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을 네 분이나 보내드려야 했었다. 혈액암으로 투병하시던 노스님, 당뇨합병증으로 운명한 아버지, 자궁암으로 돌아가신 외할머니, 그리고 노스님 문상을 하러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면서 교통사고로 갑자기 운명한 도반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 엄청난 고통이다. 지금 이 순간도 살이 떨리고 뭔가 안절부절못한 마음이 든다. 이렇듯 다양한 죽음, 그리고 특히 갑작스러운 죽음을 직면하고 있는 유족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 유발된다.

돌이켜 보면 나는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 이후 스스로 괴로워하던 시간이 더 많았다. '좀 더 잘해 줬더라면', '한 번 더 찾아가 사랑한다고 말할걸', '외롭다고 말할 때 곁에 있어 줄걸', '힘들다고 했을 때 안아줄걸', 모두가 과거형에 대한 죄의식이 묻어난다.

먼저 유명을 달리한 고인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건네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고인의 마음에 머물고 유족들에게 온전히 귀 기울여 마음을 다해야 할 때다. 그 누구도 그들의 죽음에 제멋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들 곁에 머물러 조용히 마음으로 어루만져야 한다.

간호를 대표하는 산스크리트어 '우빠스타하나'(upasthāna)는 '가까이에, 옆에 앉다'라고 하는 본래 뜻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 해에 네 분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난 후 생이 공허함 뿐이었던 것 같다. 10년이 지나도 그때 일을 떠올릴 때면 자꾸 회피하려는 마음이 든다. 인간의 나약함과 부족함이 출가한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때 누군가 곁에서 고요히 함께해 주는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먼저 길을 떠난 수많은 고인과 그의 가족들 우리가 모두 마음을 모아 위로하고 가까이 옆에 앉아 머물러야 할 때다. 많은 잡음의 전원을 끄고, 사랑과 위로와 격려의 전원은 켜둬야 할 때다. 현장에서 가장 가까이 다가가 그들을 도운 모든 분을 향해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한다.

5일까지 국가 애도 기간으로 정했다고 한다. 애도의 기간은 끝이 없다. 죽을 때까지 잊지 말고 기억하면서 사랑으로 보듬어줘야 한다. 몸과 마음으로 가장 가까이 곁에 앉아 있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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