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 환인, 환웅 이야기가 최초로 나온다. 이 이야기가 언제부터 전해왔는지 정확한 내막은 알 길이 없지만 고려 때 사람 일연이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삼국유사'에 기재한 것을 보면 고려 이전부터 이런 내용이 전해져온 것은 확실하다고 하겠다.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은 '삼국유사'의 고조선조에 담긴 환인, 환웅, 단군의 설화를 신화 취급하여 실재 역사로서 인정하지 않았고 현재 한국의 강단 사학은 일제 식민사학의 유산을 계승, 고조선의 단군을 신화, 환인 환웅을 선사시대로 간주하여 한국역사에서 배제하고 있다.
◆동양고전 '시경'과 한국 상고사 환국 밝족
'시경'은 동아시아 최고의 문학 총서이다. 여기에는 중국 상나라 시대부터 춘추시대 중엽까지 그러니까 서기 전 16세기부터 서기 전 6세기까지의 시가 총 311편이 수록되어 있다. 춘추시대에 공자가 편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소경離騷經'이 중국의 남방 문학을 상징한다면 '시경'은 북방 문학을 상징하는 대표적 고전이다. 동양에서 역사가 독립된 지위를 가지게 된 것은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한 이후이며 그 이전에는 문학, 역사, 철학이 뚜렷이 나뉘지 않았다. 따라서 '시경'은 북방의 문학경전인 동시에 3,500년 전 북방의 역사도 살필 수 있는 고대사자료이기도 한 것이다.
한국 상고사의 뿌리에 해당하는 환국, 밝조선은 '삼국유사'와 같은 우리 사서에는 나오지만, 중국문헌에 이를 뒷받침할만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아서 그동안 환국은 사전사로, 단군조선은 신화로 취급을 당해 왔다.
'시경'은 중국 선진시대의 문헌이자 동양의 대표적 경전 중의 하나인 만큼 '시경'에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한국 상고사의 환국과 밝족에 대한 정체가 밝혀질 수만 있다면 한국 상고사는 '시경'이라는 동양의 고전을 통해서 새롭게 증명되는 전기를 맞게 될 것이다.
◆환인, 환웅, 환국과 '시경'의 "현왕 환발玄王桓發"
'시경'에 수록된 시가는 내용상에서 풍風, 아雅, 송頌으로 분류되는데 '풍'은 주周나라 시대 각 지방의 가요이고 '아'는 주나라 시대 아악雅樂 즉 정악 가사이다.
'시경' 가운데 '송'은 주송周頌, 노송魯頌, 상송商頌 세 나라의 송이 실려 있는데 송이란 칭송한다는 의미로서 주나라, 노나라, 상나라에서 후손들이 자기 조상을 제사지낼 때 찬송하며 연주하던 곡의 가사이다.
상나라의 상송은 열조, 현조, 장발 등 모두 5편의 송이 '시경'에 실려 있다. 장발편長發篇은 상나라 후손들이 국조 탕 임금과 또 그 민족의 시조를 제사지내면서 그들의 업적과 공적을 찬미하고자 부른 시가의 명칭이다.
'장발長發'이란 제목이 붙여진 상나라 송가는 동이족, 특히 우리 밝족과 관련하여 시선을 끈다. 상고시대 동이족 가운데 장이長夷와 발족發族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장발"이란 두 글자도 한국의 상고사적 측면에서 바라보면 범연히 보아넘길 단어가 아니지만 상나라의 시조 설화 가운데 등장하는 "현왕 환발玄王桓發"이란 네 글자는 특히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기 "환발"에서 한국 상고시대의 환국과 밝족의 역사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동이족의 역사에 조예가 부족했던 주희의 "현왕 환발"에 대한 잘못된 해석
'시경'의 "현왕 환발玄王桓發"에 보이는 환桓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우리 민족의 환인桓因, 환웅桓雄의 '환'자와 글자가 같고 발發은 '관자管子'에 나오는 발조선發朝鮮의 '발' 자와 동일하다. 그런데 주희는 환발桓發에 대한 주석을 하면서 무치武治 즉 "무력으로 다스린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환발"은 한국 상고사의 뿌리를 상징하는 두 단어인데 동이사와 한국사에 조예가 부족했던 주희로서는 "환발" 두 글자를 보면서 환국과 발조선을 연상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환단고기'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환단"으로 널리 불리고 있지만 "환단"과 "환발"은 실상 글자만 다를 뿐 한국사의 시원 "환밝"을 지칭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것이다.
주희는 또한 상송 장발편의 주석을 내면서 "장발長發"을 "길이 발현된다"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역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형용사적인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현왕 환발"에서의 현왕은 상商나라의 설契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설은 순임금의 신하로서 사도司徒의 직책에 있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육부 장관직에 종사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에게 어떻게 왕의 칭호를 붙여서 현왕으로 지칭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주희는 "설을 왕이라고 한 것은 추존한 것이다(王者追尊之號)"라고 부연 설명을 했는데 그것도 잘못이다. 후손들이 자기의 조상을 왕으로 추존하는 제도는 주周나라에서 시작되었고 상나라에서는 이런 제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설을 현왕으로 추존할 수가 있었겠는가. 주희가 "환발"을 "무력으로 다스린다"라고 해석한 것도 견강부회지만 현왕을 상나라의 설이라는 인물로 비정한 것도 논리적 모순이다.
"현왕 환발玄王桓發"과 관련해서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전국시대에 노魯나라 모형毛亨과 조趙나라 모장毛萇이 편집 주석한 '모시毛詩', 즉 현재 유행하는 '시경'에는 "현왕 환발玄王桓撥"로 되어 있지만 한나라 초기 연燕나라 사람 한영韓嬰이 전수한 '시경'인 '한시韓詩'에는 "현왕 환발玄王桓發"로 되어 있고 "발發은 명明이다"라고 주석한 점이다.
한영의 '한시'가 발撥을 발發로 표기하고 이를 밝을 명明자의 뜻으로 해석한 것은 동이사적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관자'에 나오는 발조선發朝鮮의 발이 광명을 뜻하는 우리말의 한자표기라고 인식하면서도 그것의 근거를 찾기는 쉽지 않았는데 이는 곧 발조선의 발이 광명 즉 밝을 의미한다는 확실한 근거를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동이의 역사에 조예가 깊지 못했던 주희는 환국의 환과 발조선의 발을 알지 못한 까닭에 "장발"을 "길이 발현한다" "환발"을 "무력으로 다스린다" "현왕"을 "순임금의 신하 설을 말한다"라고 해석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주희 해석의 문제점과 그가 이렇게 해석한 이유
주희의 '사서' '삼경'에 대한 주석을 살펴보면 역사 특히 동이사와 관련된 부분에서 많은 오류가 발견된다. 따라서 이 경우도 주희가 역사지식이 부족해서 이런 잘못된 해석을 했을 수 있다고 본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주희는 공자의 존화양이尊華攘夷 사상의 절대적 신봉자였다. 따라서 그의 역사관은 언제나 화하족을 두둔하고 동이족을 배격하는 입장에 서 있었던 것이 '논어'를 비롯한 여러 유가 경전 주석 상에서 확인된다.
하, 상, 주의 역사는 중국 고대사의 뼈대를 이룬다. 특히 상나라는 은허의 갑골문과 왕궁터의 발굴에서 보듯이 고고학적으로 증명되는 중국 최초의 왕조이다.
그런데 여기 '시경' 상송 장발편의 "환발"을 환국과 밝족으로 해석하여 상나라가 우리 환국 밝족의 후손이라고 한다면 중국 한족의 역사는 사실상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사마천 '사기'이후 상나라의 역사를 하夏나라를 계승한 화하족 계통의 역사에 포함시켰는데 '시경' 상송의 "현왕 환발"을 환국과 밝족으로 해석할 경우 상나라가 화하족이 아닌 밝족의 자손이 되어 중국역사의 정통성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주희는 장발長發이나 환발桓發이 지닌 본래의 뜻을 알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한편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길이 발현된다"거나 "무력으로 다스린다"라는 엉뚱한 해석을 하고 환국 밝족의 뜻은 은폐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겠다. 〈계속〉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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