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발생한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 화재 참사 유가족들이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자 서둘러 자동차를 몰아 팽목항으로 달려갔다. 망연자실하고 있는 세월호 가족들의 손을 맞잡고 그들이 건넨 첫 마디는 "죄송하다"였다. 무슨 뜻이었을까. "대구 지하철 참사를 잘 기억했다면 이런 일을 또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찰이 없었던 탓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싸우지 못해서 또 이런 고통을 겪는군요." 대구 지하철 참사 유가족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피를 토하는 절규였고 통탄이었다. 그들은 아마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 희생자 가족을 만나더라도 같은 얘기를 할 것이다.
재난은 기억의 약한 지층을 비집고 올라오는 마그마 같다. 대구 지하철 참사로부터 십 년쯤 후에 세월호가, 이십 년쯤 후에 이태원 참사가 우리 공동체를 갈기갈기 찢어 놓은 것도 우리의 기억이 약해진 틈 때문이다. 그래서 "또 당하는구나"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 소식을 접하는 대구 지하철 참사 피해자 가족들의 회한은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다.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사에 화재 참사 현장을 보존하고 있는 '기억의 공간' 벽에 붙어 있는 메시지처럼 '과거를 잊은 도시에 미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재난이 일어났을 때 얼마간은 세상이 떠나갈 듯 시끄럽게 떠들다가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망각 속으로 빠져 버린다. 그 허술한 틈을 타고 재난의 비극은 우리를 찾아온다. 이것이 '재난의 기억학'이다.
그날 왜 이태원에 갔나, 그런 위험한 상황을 왜 감지하지 못했나,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피했어야지 뭘 했나. 이처럼 재난 피해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행위론도 늘 되풀이되는 재난의 기억학이다. 이번에도 그런 얘기가 들린다. 그 시간에 거기에 '놀러 간 젊은 애들'을 책망하는 어른들이 있다고 한다. 답답해서 하는 말이겠지만 그런 태도야말로 재난의 본질을 호도하게 만드는 착각의 늪이다. 그 시간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10만 명을 넘었다고 하면 그로 인해 생긴 문제는 이미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며, 따라서 그것은 행위자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재난 피해자에게 "왜 하필 그날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나"는 식의 행위론적 질문은 우리를 운명론과 같은 체념에 빠지게 하거나 끝없는 자학의 형벌로 몰아넣는다. 운명론적 체념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하여 문제 해결을 할 수 없게 하고, 자책성 형벌 역시 문제 해결은커녕 개인에게 감당할 수 없는 심리적 고통만 불러일으킨다. 대구 지하철 참사 때, 불이 났던 그 지하철로 자식을 태워 보냈던 어떤 부모는 그런 질문 때문에 자신이 자식을 죽였다고 하는 자책을 하며 처절하게 살고 있다. 그날 아침, 늑장을 부리는 자식을 깨워 억지로 밥 먹이고 등을 밀어 지하철을 태워 학원으로 보냈는데 바로 그 지하철에서 불이 났다는 것이다. 그랬으니 자신이 자식을 죽게 했다고 가슴을 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 자식을 죽인 것은 지하철 화재를 관리하는 시스템의 잘못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필 왜 그 시간 이태원 그 자리에 있었나"라고 물을 것이 아니라 "어떤 객관적 요인들이 그런 재난을 일으켰나"라고 질문해야 한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축제 참가자들이 뜻밖에 많았고 길이 비좁고 가팔랐으며 그 때문에 사람들이 밀려 넘어졌다고만 할 일이 아니라 그러한 위험이, 그러한 사고의 가능성이 왜 적절히 관리되지 않았는지라고 물어야 한다. 이것이 재난 피해자들과 연대를 시작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다"고 큰 소리로 말해 주어야 한다.
지금은 수습과 애도의 기간이다. 재난 피해자들의 상실과 아픔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지금은 공감과 위로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와 함께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을 진행해야 한다. '원인 규명'이 '책임 추궁'으로 번져 정치화되는 것은 경계할 일이지만 이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사실은 서둘러 철저하게 밝혀야 한다. 그리고 함께 기억해야 한다.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여 '또' 이런 비극을 겪는다는 2003년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 화재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의 통탄, 2014년 세월호 유가족의 울부짖음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기억과 연대의 힘으로 이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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