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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174> 신선, 소나무, 바위…삼중 배치한 장수의 상징

미술사 연구자

김은호(1892-1979),
김은호(1892-1979), '수여적송(壽如赤松)', 1961년(70세), 종이에 담채, 14×51㎝, 개인 소장

김은호는 인기가 많았다. 21세의 젊은 나이에 순종어진을 그린 어용화사였고, 서화협회전(1921-1936년)과 조선미술전람회(1922-1944년)를 통해 감각적 화풍의 채색화로 대중적 인기를 모았다. 다수의 대중이 많은 미술품을 한 장소에서 관람할 수 있는 대규모 전시회는 미술을 많은 사람들에게 접촉시키고 인기화가를 탄생시켰다.

김은호는 초상화, 미인화, 도석화뿐 아니라 산수, 실경산수, 사군자, 화조, 영모, 풍속 등 모든 장르를 소화했고 심지어 유화도 그렸다. 일본에 유학할 때 동양화를 멸시하는 서양화가와 시비가 붙자 유화재료를 사다 인물화를 그려 공모전에 입선하며 그림싸움을 벌일 정도로 그림이라면 자신만만했다.

인기화가 김은호의 인기 많은 그림이 신선도다. '수여적송(壽如赤松)'으로 제목을 쓰고 '신축하(辛丑夏) 위(爲) 소오선생(素吾先生) 법안지정(法眼之正) 이당(以堂) 사(寫)'로 관지를 썼다. 인장은 호리병 모양 머리도장 '빙심(氷心)'과 '김은호(金殷鎬)', '이당(以堂)'이다.

깃털부채 들고 소나무에 기대앉은 노인을 신선 적송자(赤松子)로 보면 수여적송은 '적송자처럼 장수를 누리시라'는 뜻이 되고, 그냥 불특정한 신선이라도 신선처럼, 붉은 소나무처럼 오래오래 사시라는 그림이 된다. 소나무와 신선을 함께 그려 적송과 신선 적송자를 동음이의어로 활용한 재미를 준다. 이렇게 이야깃거리가 되는 의외의 재미까지 들어 있는 그림이어서 호응이 좋았던 듯, 김은호는 같은 제목으로 비슷한 그림을 여러 점 그렸다.

수여적송에 그려진 영생불멸의 신선, 십장생의 소나무, 그리고 뒤쪽에 그려진 석수만년(石壽萬年)의 바위는 모두 장수를 기원하는 뜻이다. 삼중으로 장수 상징을 배치해 그 효과를 세 배로 확장했다. 생사를 초월하는 신선이 있다고 정말 믿지는 않겠지만 신선은 가깝게는 무병장수, 멀게는 불로장생에 대한 염원이다.

누구나 장수를 바라듯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좋아한 신선은 자유로운 존재의 상징이기도 해서 "신선이 따로 없다", "신선처럼 산다"는 말로 삶의 어떤 태도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신선이라는 어휘는 생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세상사를 넘어서는 자유가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위안을 준다.

신선도는 죽음이라는 거북한 필연을 가리는 장치다. 오래오래 사시라는 축원을 담은 신선도를 선물 받는다는 것은 이미 많이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앞으로의 날이 살아온 날들보다 훨씬 적다는 뜻이다. 삶의 끝에 죽음이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신선도는 죽음의 문제를 장수로 덮은 회화적 해결책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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