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브뤼헐의 그림

최성규 미술중심공간 보물섬 대표

최성규 미술중심공간 보물섬 대표
최성규 미술중심공간 보물섬 대표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 있는 빈 미술사 박물관의 컬렉션은 피터 브뤼헐이라는 네덜란드 화가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은 16세기 초 브라반트 공화국의 화가였던 브뤼헐의 대표작품 중 하나다. 사순절은 부활절의 40일 전, 주일을 뺀 40일간의 기간을 말하며 가톨릭 신자들은 이 기간 동안 평소에 즐겨하던 것을 멈추고 절제했다고 한다. 사순절에는 저녁이 되기 전까지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저녁에는 육식하지 않으며 생선과 달걀과 우유로 만든 음식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금식에 들어가는 사순절 전야에 고기 파티로 시작되는 날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사육제로 '고기'를 의미하는 라틴어 '카니스' 와 '안녕'이라는 의미의 '발레'를 합쳐서 지금의 축제라고 불리는 '카니발'이 된 것이다.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은 이런 사순절과 사육제의 관계를 재미있게 표현한 그림으로, 그림 왼쪽은 사육제를 즐기는 사람들, 오른쪽은 사순절을 지키는 사람들이 묘사되어 있다. 왼쪽에 사육제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은 고기를 굽고 있고, 고기를 들고 술통 위에 올라타 흥을 돋우고 있다. 어떤 사람은 불룩 나온 배를 두들기며 음악을 즐긴다. 반면 맞은편의 교회에서는 사순절을 지키고 있다. 애써 규범을 지키는 이들의 모습은 무겁고 초췌하고 힘들어 보인다.

그림은 인간은 경건만을 추구하지도 않고 쾌락만을 추구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인간은 경건과 탐욕을 동시에 추구한다. 돌발적인 타락과 쾌락을 탐하는 모습은 경건한 이에게도 불현듯 발현될 수 있다. 그것은 인생의 실패가 아니다. 완전하게 경건한 인간은 없다. 동시에 완전하게 경건을 거부하는 사람도 없다. 브뤼헐의 그림은 선, 악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가지는 두 가지 측면을 하나의 장면에 보여줄 뿐이다.

지난 29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용산구 이태원의 거리에서 벌어진 일은 '참상'이다. 브뤼헐 그림의 배경인 넓은 광장이 아닌 좁은 골목에서 벌어진 일이다. 10년 전부터 우리의 문화의 하나로 받아들여진 핼러윈은 긴 코로나19의 통제에서 풀린 이태원의 축제로 극에 달했다. '참상'으로 이어진 핼러윈을 한심하게 보며 그곳에 간 젊은이들을 쾌락만을 추구하는 무리라고 매도하며 사건의 책임을 그들에게 돌리는 것은 잔인하며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이태원의 '참상'은 그곳을 방문한 젊은이들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여러 문제가 겹쳐서 터졌다.

문화의 경건함과 퇴폐를 이야기하며 이날의 '참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다. 새로운 축제문화는 언제나 만들어진다. 새로운 문화는 모든 이의 눈에 흡족하지는 않을 것이며 기성세대의 눈에 반드시 도덕적이고 건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번 참상은 핼러윈이나 이태원이라는 장소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축제를 부추기면서도, 축제를 부정하는 모순에 빠진 우리 사회의 문화는 이태원의 좁은 골목에서 압살 당했다. 서울의 어느 구청장이 이태원의 핼로윈은 축제가 아니라 하나의 '현상'이라는 말에서 이 시대의 '책임과 양심'은 무참히 살해 당했다.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공동체를 책임지는 자들이 빠져나갈 생각만 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500년 전 네덜란드의 한 화가의 그림 속의 세상보다 올바른 세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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