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바쁨을 경계하자

백창하 연출가

백창하 연출가
백창하 연출가

올해도 이제 두 달을 남겨놓고 있다. 시간이 참 빠르게 가는 것 같다. 비수기인 연초를 지나기만 하면, 늘 브레이크가 고장이 난 트럭처럼 연말을 향해 질주하는 듯 달려간다.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다보면 다시 다음 해를 맞이하게 된다.

한동안 이 사이클을 반복하며 깨달은 것은, 능동적으로 시간을 쓰지 못했었다는 사실이다. 일이 많고 바쁜 것은 좋은 것일 수 있다. 프리랜서 예술인에게 가장 우울할 때는 바로, 지인이 요즘 뭐해? 라고 물었을 때, 딱히 대답할 것이 없는 경우가 아닐까.

하지만 바쁜 것은 경계할 필요도 있다. 앞서 말한 듯 내가 능동적으로 일정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스케줄에 끌려 다니게 될 가능성이 있다.

연출가로서 중요한 공연이나 작업을 할 때는 반드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려고 한다. 여러 일을 동시에 진행하다 보면, 충분하고 오롯이 한 작업에 몰두하기 힘들다. 아주 소중한 일이라면, 다른 일을 접어두고 그 일에 몰두하는 것이 현명하고 또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시간을 확보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다른 일정을 잡지 않는 것이다. 쉬워 보일 수 있지만, 꽤 여러 현실적인 유혹을 참아내야 한다. 사전 준비단계와 연습을 지나 한 작품을 공연하기까지는 최소 몇 달이 걸린다. 이 기간에 다른 일을 비우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려면 수입이 줄게 된다. 일이라는 것은 항상 몰릴 때가 있기 마련이다. 매력적인 일들이 동시에 의뢰가 들어오기도 한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아주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스스로를 성장시키기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공연이든 어떠한 작업이던 늘 새로움이 필요하다. 늘 새로운 것들을 공부하고, 보고, 찾아다녀야 발전의 가능성이라도 생긴다.

사실 이 성장을 위한 시간을 만드는 것이 매우 어려운 지점이다. 잠을 줄이거나 시간을 잘 쪼개 사용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지만, 이는 자칫 스스로를 성장시킨다는 즐거움을 잊어버리고,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달, 일 년 시간이 지나고 경력이 쌓고 나니 새삼 일을 선택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됐다. 이 일을 올해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충분히 고민하여 이제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고, 단순히 예술가로서 생존에 유리하기만 한 일들은 이듬해엔 하나둘씩 정리하는 편이다. 또 능동적으로 일 년의 시간을 보내되, 가능하면 바쁘지 않게 살려고 노력한다.

일을 줄이고, 시간을 확보하여 자기 계발을 위해 투자하지 않는다면, 예술적 성장은 없고 단순히 기술적으로만 숙달된 기능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처럼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을 할까 보다, 앞으론 어떠한 일을 하지 않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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