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갑다 새책] 납치된 서유럽

밀란 쿤데라 지음·장진영 옮김/ 민음사 펴냄

납치된 서유럽(밀란 쿤데라 지음·장진영 옮김/ 민음사 펴냄)
납치된 서유럽(밀란 쿤데라 지음·장진영 옮김/ 민음사 펴냄)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밀란 쿤데라의 에세이를 담은 '납치된 서유럽'이 국내에 출간됐다.

작은 책자 정도 크기의 책이지만, 읽는 시간은 예상보다 더 길지도 모른다. 쿤데라가 '문학과 약소 민족들'(1967년)과 '납치된 서유럽-혹은 중앙 유럽의 비극'(1983년) 등 두 편의 글이 실렸다. 이 두 편의 글은 쓰인 직후 한 번도 단행본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2021년 11월 프랑스 출판사 갈리마르의 데바 총서로 출간됐다.

쿤데라의 이 에세이는 최근에서야 다시 주목받고 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맞물리면서다.

글에서 쿤데라는 러시아(당시 소련)의 서진(西進)에 대한 욕망이 중앙유럽 약소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잃게 만들었고 분석했다.

여기서 중앙유럽은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의 국가를 일컫는다. 글을 발표할 당시 오스트리아를 제외하고 모두 러시아의 위성 국가로 전락했던 곳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헝가리 혁명(1956), 프라하의 봄(1968), 폴란드 봉기(1956·1968·1970) 등 치열한 저항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중앙유럽은 고대 로마와 가톨릭을 문화의 젖줄로 삼은 국가로, 비잔틴과 정교회의 영향 아래 있던 러시아, 불가리아 등 동유럽 국가들과는 문화적 생태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중앙유럽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서서히 동유럽화했다. 쿤데라는 이를 '중앙유럽의 비극'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한때 중앙유럽과 서유럽을 긴밀히 연결해주던 '문화의 힘'이 전반적으로 쇠락한 점도 중앙유럽의 동유럽화를 가속했다고 덧붙인다. 이는 '다양성'을 최고 가치로 삼던 유럽이 상업화 물결에 의해 그 정신적인 기반을 잃었기 때문이다.

"정치체제로 볼 때 중앙유럽은 동유럽이다. 하지만 문화사로 보면 중앙유럽은 서유럽이다. 그런데 유럽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고 있기에 중앙유럽에서 단지 정치 체제만을 본다. 다시 말해 유럽은 중앙유럽에서 동유럽만을 볼 뿐이다."

쿤데라는 중앙유럽이 소련의 압박에 못 이겨 언어와 문화 등의 정체성을 잃게 된다면, 결국 서구 세계도 파괴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다. 84쪽, 1만1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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