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대단한 예술이다. 시는 행(行)과 연(聯)으로 이루어진다. 걸어갈 행, 이어질 연.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 아래로 쌓여가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할 게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니까."('책머리에' 중)
'몰락의 에티카',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등으로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4년 만에 신작을 발표했다.
처음으로 선보이는 시화(詩話)다. 총 5부에 걸쳐 동서고금 스물다섯편의 시를 꼽아 실었다.
1부 '고통의 각'은 가장 오래된 고통이라 할 '공무도하가'로 시작한다. 이어 '무죄한 이들의 고통에 대하여'를 부제로 한 '욥기'를 비롯해 에밀리 디킨슨, 에이드리언 리치, 최승자 등의 시를 나열했다. 인생에 대한 책의 첫 장에 내세운 고통. 지은이는 고통이라는 날카로운 각을 겪어내는 슬픔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에서부터 인생의 공부가 시작된다고 얘기하는 듯 하다.
2부 '사랑의 면'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연가(戀歌) '소네트 73'과 릴케의 비가(悲歌)를 나란히 실었고, 이영광 시인의 '사랑의 발명', 나희덕 시인의 '허공 한줌' 등 사랑의 다양한 얼굴들을 나열했다.
3부에는 인생의 피할 수 없는 질문인 '죽음'을 얘기한다. 생육신 김시습과 W.H.오든, 황동규 등의 시를 통해 죽음 곁에는 결국 다시 삶과 사랑이 놓임으로써, 그것이 끝이 아님을 보여준다. 4부 '역사의 선'은 무수한 삶과 삶들의 사이에 놓인 생에 대한 얘기다. 지은이는 "우리에게 필요하고도 가능한 일은, 언제나 우리 각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그러니까 평화를 함께 지켜내는 일일 것"이라고 말한다.
5부에서는 이성복, 레이먼드 카버, 김수영, 필립 라킨, 로버트 프로스트 등 불멸의 시인들이 쓴 인생에 대한 시를 소개하며 끝마친다.
시 한편마다 하나의 인생이 담긴 셈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시를 읽음으로써 인생을 알기보다 인생을 겪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다양한 인생을 '겪은' 뒤 책을 덮기 전 아쉬움을 달래듯,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다행이지 않은가. 인생은 다시 살 수 없지만, 책은 다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328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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