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아! 이태원 참사(慘事)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결실과 감사의 계절인 가을에는 축제가 풍성하다. 필자는 2006년 미국 하버드의대 메사추세츠 종합병원 우울증임상연구프로그램 연수 시절, 핼러윈(Halloween·미국식 발음 할로윈)을 처음 만났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10월의 마지막 날 밤에 이웃의 어린이들이 괴물이나 마녀, 유령 등 각양각색의 복장을 하고 바구니를 든 채 이웃 집을 찾아다니며 집집마다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문을 열어주면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과자를 주지 않으면 장난칠 거야)이라고 외친다. 나는 미리 준비한 사탕과 초콜릿 등을 즐겁게 건넸다. 당시 우리 아이들도 초등학생이었는데, 이 핼러윈 문화를 즐겼다.

그로부터 16년 후의 핼러윈, 지난달 29일 저녁 서울 이태원은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몰려든 청년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 그러나 곧 비명과 울음 그리고 사이렌 소리로 상상조차하기 어려운 아비규환(阿鼻叫喚)의 비극으로 치달았다. 156명의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주 희생자는 20대였다.

20대 청년 자녀를 둔 필자에게는 더욱 한없는 슬픔이 가슴을 때리지만,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다. 망자는 돌아올 수 없고, 참사는 되돌릴 수 없다. 그렇지만 2차 가해와 피해만큼은 막아야 한다. 그리고 치유로 나아가야 한다. 다음을 제안한다.

첫째, 희생자를 향한 근거 없는 비난과 혐오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핼러윈 문화를 즐기러 축제가 열리는 곳에 간 청년들에게 "거기에 왜 갔냐" "놀러 가서 사고가 난 것"이라는 등의 말로 희생자, 생존자, 유가족의 가슴에 비수(匕首)를 꽂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른들이 단풍놀이, 불꽃축제에 가서 노는 것도 비난을 받아야 하나. 청년들의 문화를 어른들의 틀 속에 가두어 판단하지 말자. 지금 그들에게는 섣부른 조언도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는 시기이다.

둘째, 참사로 인한 이차적 심리적 트라우마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여과 없이 노출되는 사고 당시의 현장 영상과 사진을 퍼뜨리는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현장 영상이나 사진을 과도하게 반복해서 보는 행동으로 재난에 대한 간접적인 노출이 과하면 정신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거나, 누군가에게 마음의 상처가 될 가능성이 있거나, 지금 시기에 필요하지 않는, 섣부른 내용의 전파는 하지 말자. 이것이 성숙한 공동체 구성원의 도리(道理)이다.

셋째, 이런 시기일수록 공동체 구성원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언론은 재난보도준칙을 준수해야 한다. 이번 참사로 정신 건강에 어려움을 겪는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올바르고 도움이 되는 정신 건강 정보를 제공하자. 그리고 미담(美談) 보도를 많이 하여 선한 영향력이 널리 퍼지도록 앞장서야 한다. 누군가가 자신을 돕고 걱정해 주고 있다는 공동체의 작은 지지만 있어도 트라우마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넷째,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대부분의 생각과 감정은 두려워할 병리적인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럴 수 있는, 또한 지나가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끝으로, 살아남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희생자에 대한 깊은 애도와 유가족에 대한 심심한 위로, 생존자에 대한 온전한 회복 기원이다. 또한 동시대를 함께 산 동인(同人)으로서,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기와 청년 희생자들의 못다 이룬 꿈과 희망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마음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도 우리 대한민국도 사회적 역사적 트라우마가 있다.

그러나, 개인이나 사회는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이 아닌 '외상 후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이태원 참사 후 스트레스 반응'이 아니라 '이태원 참사 후 성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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